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소재 이슬람사원(모스크) 두 곳에서 발생한 무슬림 혐오 범죄의 후폭풍이 거세다. 뉴질랜드 내에서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백인 우월주의나 이주민 혐오 논란 등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람(테러 용의자)은 총기 면허를 통해 합법적으로 총기를 얻을 수 있었다. 분명히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총기 관련 법 개정을 약속했다. 아던 총리는 18일 국무회의를 소집해 총기 구입부터 탄창 구매 제한까지 총기 관련 규제를 전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테러에 뉴질랜드의 느슨한 총기 규제가 한 몫 했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뉴질랜드에서 사냥용 총기는 어디서나 쉽게 취득할 수 있고 등록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AFP통신은 테러범인 브랜턴 태런트(28)의 모국인 호주에선 총기 규제가 엄격해 이번 테러에 사용한 총기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번 테러가 ‘백인 우월주의ㆍ이주민 혐오’와 연관됐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태런트가 ‘백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상징’으로 치켜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 백악관에서 ‘이번 테러가 백인 우월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면서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진 소수 사람이 벌인 일”이라고 답했다. 이번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우려를 일축한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백인 우월주의자 선전 활동은 전년도에 비해 187%나 증가한 1,187차례에 달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7년에 보고된 증오범죄 건수가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치평론가 아에샤 하자리카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 입국 금지 공약이 이 같은 추세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호주에선 프레이저 애닝 연방 상원의원이 테러의 원인을 “무슬림 이민과 (이를 수용한) 이민 프로그램에 있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분노한 10대 소년이 날계란을 손에 쥔 채 뒤통수를 가격하자 그는 소년의 얼굴을 때렸고 이 과정은 온전히 생중계됐다. 그의 의원직 박탈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순식간에 3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시민들은 성소피아 박물관는 앞에서 테러 사망자 추모 집회를 열고 성소피아를 이슬람사원으로 되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소피아는 기독교의 본산이었지만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한 뒤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태런트의 북한 방문 사실과 그 이후 “뭔가 변했다”는 증언이 나와 그가 이주민 혐오를 갖게 된 계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런트가 일했던 호주 피트니스센터의 매니저 트레이시 그레이는 방송 인터뷰에서 “태런트가 북한을 포함해 유럽,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곳곳을 방문했는데 해외여행 중 그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까지 50명으로 늘었고 부상자 중 위독한 사람들도 있어 추가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희생자 중엔 지난해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를 찾은 시리아 난민, 전쟁터로 변한 고국을 떠나온 소말리아인과 아프가니스탄인 등이 포함돼 테러의 참혹함을 다시금 일깨웠다. CNN방송은 이날 “부상자들이 기어서 도망가거나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범인은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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