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올해 21승2패(14연승 포함, 승률 91.3%), 다승 및 승률 부문 1위 질주
지난해 이맘때 8승4패에 비하면 일취월장
AI 덕분에 반상 운영과 심리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자신감 UP
박하민 5단이 1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2018 크라운해태배’ 시상식에서 우승 소감을 전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과분합니다. 이제 곧 제 실력도 바닥이 드러날 겁니다.”

멋쩍어 했다. 과도하게 포장된 자신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경우, 세간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희석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그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였다. 연초부터 국내 바둑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박하민(21) 5단 얘기다. ‘박하사탕’이란 별명을 가진 그는 15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많이 부족한 데, 아직까진 (운이 좋아서 연패 등의 덫에) 걸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겸손함으로 말문을 열었지만 박하민 5단은 요즘 국내 바둑계의 ‘깜짝 스타’다. 최근 연승 기록이 ‘14’에서 멈췄지만 바둑계에 ‘박하사탕’의 경계령은 이미 떨어진 상태. 일부에선 국내 반상(盤上) 지형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재목으로 주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국내 최대 기전인 ‘2018 KB바둑리그’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거머쥔 박하만 5단의 기세는 새해 들어서도 폭풍 질주 태세다. 올해 박하민 5단의 성적은 15일 기준 21승2패(승률 91.3%)로, 현재 다승과 승률에서 모두 1위다. 지난해 같은 기간 사이 8승4패(승률 66.7%)에 머물렀던 성적에 비하면 말 그대로 일취월장이다. 박하민 5단의 승수 쌓기 재물 명단엔 국내 바둑계 간판 스타로 랭킹 1위인 박정환(26) 9단과 9위인 나현(25) 9단 등의 거물들도 포함됐다. 지난 달엔 ‘2018 크라운해태배’(우승상금 3,000만원, 만 25세 이하) 우승컵까지 차지, 프로 입단 이후 첫 타이틀도 가져갔다. 덕분에 올해 3월 현재 박하민 5단의 국내 랭킹은 29위로 뛰어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그의 랭킹이 71위였던 점에 비춰보면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인터넷 바둑의 애호가였던 부친의 경기를 7세때부터 어깨 너머로 보면서 자연스럽게 반상의 세계로 접어든 박하민 5단이 15년 만에 빛을 보기 시작한 셈이다.

박하민 5단도 최근 자신의 기력이 확실하게 한 단계 올라섰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서슴없이 인공지능(AI)를 꼽았다. “AI 효과를 많이 봤어요. 일단, 바둑판에선 포석 단계에서의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해졌어요. 제 성격이 무난한 편이다 보니, 새로운 시도 같은 걸 잘하지 못했거든요. 근데, AI가 제 약점이었던 이 부분을 치유하는데 해법을 제시해줬습니다.”

박하민 5단이 이달 13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제2회 용성전’(우승상금 3,000만원) 6조 승자조 경기에서 국내 랭킹 2위인 신진서(19)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박하민 5단은 이 대국에서 패했지만 이어 벌어진 유병용(31) 5단과의 대국에서 승리, 이 대회의 16강에 진출했다. 바둑TV 캡처

그는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저 보단 상위 랭킹에 있는 선수들과 대결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거든요. 사실 바둑도 알고 보면 심리전인 성격이 강한 데, 저에겐 많이 모자란 부분이었습니다. 근데, AI와 대국을 하면서 이 부분이 굉장히 많이 개선이 됐습니다. 이젠 어느 누구와 대국을 벌여도 위축되는 면은 사라졌습니다.”

박하민 5단은 무엇보다 AI를 통해 습득한 자신감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전했다. “복잡해진 형국에서 어떤 수를 뒀을 때 ‘이게 정수인가’라고 의문이 들 때가 많았고, 대국을 이어가면서도 앞서 두어진 그 착점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울 때가 때가 적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결과적으로 바둑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았어요.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지금은 AI 덕분에 ‘제 자신을 믿고 두자’란 다짐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박하민 5단의 최근 상승세는 결국, 자신감의 회복을 AI에게서 뽑아낸 가장 큰 선물로 지목했다.

무서운 기세를 타고 있는 박하민 5단이지만 약점은 노출돼 있다. “왜 그런지,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지만 제가 힘을 앞세운 기풍의 기사들에겐 약해요. 앞으로 반드시 보완해야 될 부분입니다.” 박하민 5단이 이런 스타일의 동갑내기 기사인 송지훈(21) 4단과 상대전적에서 지금까지 4전 전패로 천적관계를 형성한 배경이기도 하다.

비로소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그에게도 프로바둑 기사로서 감내해야 할 현실에 대한 비애는 언제나 부담이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면서 미팅도 하고 싶고 여행도 마음껏 가보고 싶죠. 그렇지만 프로바둑 기사로서 항상 승부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요. 솔직하게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프로의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관리 이외의 방법이 없단 사실을 박하민 5단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 그는 체력단련을 위해 1주일에 2,3회 가량 복싱도장에 가는 스케줄 이외엔 오직 바둑에만 몰두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박하민 5단은 자신의 반상 나침반도 분명하게 제시했다. “다른 모든 프로기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세계대회 우승이 최우선 목표입니다. 서두르진 않겠지만 빠르면 좋겠죠. 그리고 많은 바둑 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프로바둑 기사로 남고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선 강한 집념이 묻어났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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