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 1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노스찰스턴=AP 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저력으로 평가됐던 정치자금 기부문화와 행정시스템의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양심적 시민과 공무원의 자발적 참여와 헌신으로 잡음 없던 정치자금 조성과 빈민구제 시스템에서 각종 누수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사회주의’ 바람이 부는 등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수호자를 자임하는 미국을 지탱해온 핵심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버니 샌더스 등 이름 팔아 25만달러 챙겨

최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은 1970~80년대 캘리포니아주의 저명한 사업가였던 존 피에르 듀폰(80)을 금융사기, 신원도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듀폰은 정치기부금 사이트 15개, 가짜 정치행동위원회(PAC) 3개 이상을 만들어 총 25만달러(약 2억8,200여만원)를 편취했다”며 “수천명이 힘들게 번 돈을 기부했으나, 실제로 정치인에 건네진 돈은 한 푼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금액 전부를 벤츠 차량 구입이나 임차료 지불, 향후 사업 구상 등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시작된 듀폰의 사기 행각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는 물론, 지난 4월 체포될 때까지도 계속됐다. 버니 샌더스(무소속ㆍ버몬트) 상원의원과 베토 오루어크(텍사스ㆍ민주당) 전 하원의원 등 일반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정치인들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한 뒤 모두 떼어먹는 식이었다. 듀폰은 특히 연방선거위원회(SEC)에 허위 서류까지 제출했다. 시민사회의 양심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기존 미국식 풀뿌리 기부금 모금의 허술한 감시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7년 8월 미국 워싱턴 거주자들이 저소득층을 위한 영양보충지원 프로그램(SNAP) 수당 지급을 위한 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공무원, 저소득층 지원 대가로 뇌물ㆍ성관계 요구

지난달 WP가 보도한 미국 수도 워싱턴DC 지방공무원들의 ‘복지수당 사기’ 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사회복지 프로그램 운용 절차를 조작해 지원금을 부당하게 지급한 뒤, 그 돈의 일부를 돌려받아 왔던 것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영양보충지원프로그램(SNAP), 빈곤가구임시생활지원(TANF) 등이 범죄에 악용됐다.

워싱턴DC 복지사업국(DHS)에서 13년간 근무한 드미트리어스 맥밀런(48)은 지난해 4~7월 복지수당 수급대상 305명에게 779차례, 총 150만달러의 보조금을 건넸다. 그런 뒤 이들에게 총 38만달러를 요구해 최소 15만달러를 현금 리베이트로 챙겼다. 다른 공무원 게리 할러데이(49)는 대상자의 가짜 계좌를 개설한 뒤, 이와 연동된 복지카드에 TANF 수당 40만달러를 이체함으로써 맥밀런의 범행을 도왔다. WP는 “사회복지사에겐 지원금 수급대상자를 상대로 최대 2,000달러의 지불조정 승인권이 주어지는데, 두 사람은 이 권한을 범죄에 활용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맥밀런은 복지수당 지급 대가로 사실상 성관계까지 요구했다. 그가 보조금을 건넨 305명 가운데 296명이 여성이었는데, 이 중 50명에게 성적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지난달 법정에 출석한 맥밀런은 뇌물수수 혐의와 함께 10~20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진 사실도 시인했다. WP는 “맥밀런과 할러데이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인 수사의 일부”라는 대니얼 루카스 워싱턴DC 감사관의 언급을 전하면서 이들 두 사람 외에도 추가로 형사처벌 대상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도의 구조적 허점을 이용한 범죄와 함께 최근 사회주의에 대해 미국인의 43% 가량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하면서 자본주의ㆍ시장경제 종주국을 자처하던 미국 사회에 근본적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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