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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장자연, 승리ㆍ정준영…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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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장자연, 승리ㆍ정준영…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다

입력
2019.03.16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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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비호세력 수사를 넘어

이참에 성상품화 구조 수술해야

[저작권 한국일보]김학의ㆍ장자연ㆍ승리ㆍ정준영 성범죄 사건 주요 의혹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김학의ㆍ장자연ㆍ승리ㆍ정준영 성범죄 사건 주요 의혹_김경진기자

“성범죄 사건이 있으면 이제껏 ‘일부’ 남성이 문제라고 했는데 더 이상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

“명색이 부모인데 아이들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다.”

김학의, 고(故) 장자연, 승리ㆍ정준영 사건 보도가 줄 이으면서 15일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 같은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사건은 하나 같이 성범죄, 그것도 정ㆍ관계에서 힘깨나 쓰거나 문화계에서 인기를 누렸다는 이들이 때로는 마약 같은 걸 써가며 여성을 성폭행했고,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쓰거나 가해자들끼리 돌려봤다는 내용이다. 의혹이 제기되는 구체적 내용은 상세하게 언급하기 꺼려질 정도로 충격적이다.

더군다나 이 사건들은 하나같이 속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수사권 조정 문제를 앞두고 있는 검ㆍ경이 치열한 수사 경쟁을 벌일 것이라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ㆍ경 모두 이 사건들에 관한 한 이런 저런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2013년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성접대 당시 촬영된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임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 2009년 고 장자연 사건 수사 때도 검찰은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7명 가운데 2명만 기소했다. 승리ㆍ정준영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버닝썬 등 클럽을 비호해줬다는 의혹, 또 2016년 정준영의 불법촬영 사건 당시 경찰이 부실수사를 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일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은 여성 피해자들이다. 김 전 차관 의혹을 폭로한 피해 여성은 이날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여성단체 기자회견에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 참석해 그저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 여성에게 도움을 줘왔던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피해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미국으로 보내려 했다’는 식의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려왔다”고 전했다. 고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인 윤지오씨도 사건 이후 10년 동안 캐나다에 머물렀고 마침내 증언을 결심한 지금까지도 충혈된 눈과 떨리는 목소리로 두려움을 호소한다. 정준영 불법촬영 동영상의 피해자들 역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정준영 동영상’이 오르내리면서 2차 가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전문가들은 이들 성범죄의 발생, 수사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을 그저 남성의 능력을 증명하는 사냥감이나 대상물로 여기는 시각, 그리고 남자가 한 번쯤은 사고 칠 수도 있지 그게 무슨 큰 대수냐고 여기는 시각 자체가 가진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나타나서다. 이 때문에 여성계는 ‘연예계 타락상에 불과한 승리ㆍ정준영 사건 때문에 정ㆍ관계 쪽에 더 큰 의혹이 있는 김 전 차관과 고 장자연 사건이 덮히고 있다’는 일부의 불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을 대상화, 상품화하는 남성의 시각’이란 점에서는 이들 사건 모두 다를 바 없다고 봐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성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지금껏 우리는 가해자와 가해자를 비호하는 그 뒤의 권력이 누구냐를 밝혀내는 데 집중해왔다”며 “이제는 성범죄를 스릴 넘치는 게임 정도로 여기고,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구조 자체를 정조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차라리 이번을 기회로 삼자는 입장이다. 윤김 교수는 “이번 사건과 그 파문에서 그나마 긍정적 효과를 찾자면, 충격적인 성범죄는 이상한 취향을 지닌 일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 사회 생활하려면 룸살롱 정도는 한번 가줘야지’라는 평범한 인식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상의 성범죄 문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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