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진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플라스틱 통이 들려있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수관에서 흘러나온 물을 담아 나른다. 거리의 상점들은 약탈당해 난장판이 됐다.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이 정전 돼 마실 물이 끊기고 식료품이 썩어가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이다.
12일(현지시간)부로 카라카스 주를 제외한 지역의 전력이 복구됐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역대 최악의 정전사태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 그대로인 까닭이다. 베네수엘라의 전력 80%는 단 하나의 발전소, 볼리바르주 카로니강에 지어진 구리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이번 7일 이 수력발전소의 변전소가 고장 나며 한순간에 국가 전력생산량의 80%가 사라진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미군의 사이버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미구엘 라라 전 베네수엘라 전력공사 사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비 부족과 무관심”이라고 지목했다. 라라 전 사장은 “1990년대 이후로 (발전소의) 제어·통제 시스템이 업데이트 된 적이 없다”고 언급하며 “송전선과 변전소 역시 관리가 안 돼 수목이 장비를 덮어버려 오작동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발전소의 통제 시스템은 애초에 인터넷에 연결 돼 있지 않아 “미군의 사이버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국가 전력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공급원조차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현 세태가 계속되는 이상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정전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지난 2010년과 2016년 가뭄으로 인해 구리 댐의 수위가 낮아지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하루 2~4시간씩 전국의 전력공급을 중단한 적도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대체전략이 없는 것은 전력뿐만이 아니다. 전체 수출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 산업 역시 기반시설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여 원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섰음에도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작 해외 자본을 철수시킨 베네수엘라의 자체 기술력으로는 수익성을 더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플랜 B’ 없이 ‘올인’했던 경제와 사회기반이 주저앉으며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은 먹는 물을 하수관에서 떠 마시는 ‘어둠’ 속으로 내몰렸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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