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친환경ㆍ자율주행차로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앞두고 대대적인 혁신에 돌입했다. 기존 인력ㆍ라인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동시에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거는가 하면 경쟁업체 간 공동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다가올 친환경ㆍ자율주행차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전략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전기차ㆍ수소차ㆍ자율주행차 시대를 준비하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전략을 시행하는 과정에선 ‘가솔린차 전성시대’를 이끌어온 주역들과 효자 차종들의 생산라인을 배제하는 사상 최악의 구조조정 한파가 불가피하다. 완성차 업체들의 혁신 노력은 사실상 자기부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의 최강자인 폴크스바겐그룹은 최근 연례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앞으로 10년 내에 70여종 2,2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발표한 전기차 시장 전략 ‘로드맵E’에서 내걸었던 50종, 1,500만대 목표를 50% 가량 상향 조정한 것이다. 폴크스바겐 측은 “전기차와 디지털 시대라는 흐름에 맞춰 변화ㆍ혁신의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폴크스바겐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향후 5년간 관리직 7,000여명을 감원해 59억유로(약 7조5,500억원)를 확보하고 이를 재원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자 등 미래자동차를 위한 기술인력 2,000명을 충원키로 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담당 임원 자리도 새로 만들었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생산에는 다른 모델에 비해 노동력 30%가 덜 필요하다”며 생산직도 감원의 칼바람을 피해가진 못할 것임을 예고했다.
GM은 “올해부터 휘발유ㆍ경유차 생산비용을 60억달러(약 6조8,000억원)씩 줄여 이를 전기차ㆍ무인차 투자 재원으로 쓰겠다”면서 “현재 30% 수준인 미래차 관련 인력의 비중을 70%까지 늘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GM도 북미지역 공장을 5~7곳 폐쇄하고 최대 1만4,80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이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포드자동차가 유럽공장 15곳에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기존 라인업 축소에 나선 것이나 르노ㆍ닛산이 미국ㆍ멕시코ㆍ중국 공장의 감원과 가솔린차 생산규모를 20% 가량 줄이기로 한 것도 전기차ㆍ수소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생산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단기간에 기술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에서 미래차 기술력 확보를 위한 ‘적과의 동침’도 주목할 만하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와 BMW는 지난 2월 자율주행ㆍ운전자보조시스템ㆍ자동주차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GM은 혼다와 한 배를 탔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재규어랜드로버, 르노ㆍ닛산ㆍ미쓰비시 연합 등은 자율주행차 기술에서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구글 측에 경쟁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도요타는 친환경차 시장 확대를 위해 자체 보유한 하이브리드차(HV) 관련 기술특허를 무상으로 개방했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중심축은 이미 전기차ㆍ수소차ㆍ자율주행차 등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 내 판매량이 29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만큼 전 세계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지만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차의 판매량은 100만대를 넘어 전년 대비 성장률이 60%에 달했다. 2025년을 전후해 프랑스ㆍ네덜란드ㆍ노르웨이 등을 시작으로 2030년과 2040년엔 각각 인도와 중국도 가솔린차의 생산ㆍ판매를 금지한다. 미래차 시장을 선도하려는 완성차 업체들의 혁신 노력은 위기의식과 절박함의 표출인 셈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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