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서울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해당 은행들이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당장은 영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해 지역 민심을 잡아두려는 ‘선심 행보’ 성격이 강하지만, 총선 국면에 ‘지방 균형발전’이 선거 이슈로 본격 부상할 경우 경쟁력ㆍ효율성을 들어 서울 잔류를 원하는 국책은행들의 기대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14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김해영(부산 연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산은과 수은의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자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바른미래당 의원, 조경태(부산 사하을) 자유한국당 의원 등 다른 정당의 부산 지역 의원들이 대거 동참했다.
앞서 김광수(전주갑)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산은과 수은의 본점을 전북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역시 정운천(전북 전주을) 바른미래당 의원, 이춘석(전북 익산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전북 지역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 문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 설이 솔솔 피어오르자, 제2금융중심지 부산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지역 의원들이 가세하며 국책은행 유치 경쟁이 벌어진 형국이다.
당사자인 산은과 수은은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지방 균형발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조차 금융중심지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수출 지원, 산업육성 등의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두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경쟁력과 효율성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국책은행 지방이전 법안 발의에 대해 14일 “국가경제의 근간을 담보로 사익을 추구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시도”라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반발했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국회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수은은 순이익의 6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기관인 만큼 해외 바이어나 외국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며 영업하려면 서울이 더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에둘러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총선이 가까워지며 국책은행의 지방이전 문제가 이슈로 부각될 경우 상황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릴 수 있다”며 “그 경우 지금은 몸을 낮추고 있는 국책은행과 국회 간 또는 지역구 의원 간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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