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회복이냐, 군정정권 연장이냐.”
2014년 5월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 등 군부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요약되는 3ㆍ24 태국 총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관리위원회까지 장악될 정도로 군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선거법, 정부기관을 동원한 관권선거에 불구, 지난 5년간 악화한 국민들의 생활고 등 민심이반이 감지되면서 한치 앞을 알기 어려운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14일 일간 더네이션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태국 선관위는 당 해산으로 총선에 뛸 수 없게 된 타이락사차트당 후보들이 유권자들에게 ‘무선택 투표’를 유도하거나 다른 야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행위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잇티폰 분쁘라콩 선관위원장은 “’후보 무선택’이나 ‘지지 이전’ 홍보는 유권자들의 투표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선거법을 위반한 것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 문제를 들여다볼 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고 말했다.
태국 현행 선거법은 투표용지에 어떤 후보도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표기한 유권자 수가 당선자 득표수보다 많을 경우, 선거 자체가 무효 처리되고 재선거가 치러진다. 최근 왕실인사(공주)를 후보로 지명해 입헌군주제에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 명령을 받은 타이락사차트당과 탁신계 인사들이 선거를 무효화를 위해 무선택 전략을 구사하자, 선관위가 제동을 건 것이다.
이 같은 선관위의 조치는 쁘라윳 총리의 후보 자격 등에 대해 야권이 제기한 사건에 대해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또 선관위는 말레이시아 등 재외국민 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시설 미비 등으로 인한 비난 여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친(親) 탁신계 방송국에 대한 방송 중단 명령 등 쁘라윳 총리와 군부의 부당한 선거개입이 만연하지만, 군부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2014년 부패척결을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지만 모금선거자금 축소 의혹, 명품시계 스캔들로 현 정권의 도덕성은 크게 훼손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선거법을 유리하게 마구 바꾼 덕에 쁘라윳 총리의 재선 가능성이 높지만 압도적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2014년 군부 집권 후 악화한 체감경기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로 민심 이반이 상당한 수준이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 부(副) 데이터북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태국에서 상위 1% 계층이 차지하는 부(富)의 비중이 66.9%에 달한다. 2014년(50.5%) 대비 16%포인트나 악화한 것으로 군부 정권 이후 부의 편중이 더 심해졌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언론계 소식통은 “국민들 중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농촌으로 가면 민심은 더욱 흉흉하다”고 전했다.
선거가 임박했지만, 태국 국민들이 현 군부에 낮은 수준의 지지를 보내고 있거나 지지 정당을 표시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방콕대학 여론조사 결과, 군부를 지지하는 팔랑쁘라차랏당(10.2%) 지지율은 푸어타이당(11.7%), 민주당(10.6%)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결정을 유보한 비율(51.7%)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기 때문에 언론을 장악한 군부정권의 막판 개입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처럼 기성언론이 권력에 장악되자, 이들을 대신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비판여론의 우회 통로로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태국군은 전국 160개 라디오 방송국에 군을 미화하는 내용의 1970년대 관제가요를 틀도록 했다가 SNS에서 역풍을 맞고 수 시간 만에 그 같은 조치를 철회한 바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인터넷 사용시간 세계 2위, 국민의 74%가 SNS를 이용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SNS가 이번 선거에서 적지 않을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국 선거의 향방은 군부에 장악된 관제 언론과 SNS의 대결인 셈이다.
방콕=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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