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좌ㆍ우파가 공존하며 경쟁하는 체제다. 그럼에도 ‘좌파’라는 용어를 들으면 왠지 오싹해 진다. ‘좌파=공산주의자’라는 느낌이 강해서일 게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연설에서 ‘좌파정권’ 용어를 5번이나 쓴 게 께름칙한 이유다. 분단 현실을 악용해 장기 집권해 온 한국 우파는 오랜 기간 좌파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당 정치인과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다. 많은 국민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나 대표 발언에서 ‘빨갱이’라는 증오의 단어를 떠올렸다면 과언일까.
□ 더불어민주당은 ‘일베방장’ ‘태극기부대 수석대변인’ 등 원색적 표현으로 나 원내대표를 공격했다. 이해찬 대표는 ‘국가원수 모독죄’라는 시대착오적인 법까지 꺼내 들었다. 31년 전 민주화 이후 폐지됐고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한 유신시대의 잔재다. 대통령 모독 발언이라면 민주당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로 조롱했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주국 귀태(鬼胎ㆍ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 비하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저주와 독설을 쏟아 냈던 정당이다.
□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빨갱이 반기독교도’라는 증오의 언어를 동원했다. 제국주의 시절 백인은 유색인종을 ‘야만인’으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 증오의 언어가 넘쳐난다. 네티즌은 감정적 의견을 함부로 배설하고 언론은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악마화한다. 그 진앙은 정치권이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상대를 존중하며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비판의 예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권력을 좇아 편을 나누고 갈등을 부추기는 증오의 언어만 난무한다.
□ 한국 사회가 변하려면 정치 언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타자를 배제하는 증오의 언어는 폭력이다. 지지층만 의식한 저주와 독설은 흉기나 다름없다. 품격 있는 언어, 통합을 추구하는 겸손함이 정치인의 기본 덕목이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글과 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건 상대를 배려하는 교감(交感)이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무 앞서 가지 마라. 따라오지 않으면 잠시 멈춰 서서 들어라. 이해해줄 때까지 설득하라.”(대통령의 글쓰기) 민주 사회에서 좌ㆍ우파는 공존해야 할 적(敵)이지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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