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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이란의 40년 투쟁

입력
2019.03.1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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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 대공비 그레이스 켈리, 미국의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 소련의 정치인 니콜라이 포드고르니를 포함한 세계 여러 지도자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에 모였다. 이란의 왕 무하마드 리자 팔레비가 제국 설립 2,500주년을 기념하여 주최한 호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지 않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라는 새 지도자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고 그는 이 모임을 ‘악마의 축제’라고 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전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 통치하에서 추진했던 이란의 서구화를 비판했다가 터키 이라크 프랑스로 옮겨 다니며 망명생활을 했다. 1951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무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는 이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왕권 축소를 시도했으나, 미국과 영국은 1953년 그를 축출하고 팔레비 왕을 지지했다. 냉전논리의 영향을 받은 이 운명적인 사건은 평화 시기에 외국의 지도자를 물러나게 한 미국의 첫 번째 작전이었고, 그 후 미국 외교정책은 줄곧 미국과 세계 주요 지역, 특히 중동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는 혁명이 끝난 다음 날부터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했다. 호메이니가 그랬다. 그는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을 연합해 권력을 잡았지만 권좌에 오른 뒤 곧바로 융통성이 사라졌다. 정적들을 체제 전복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자유민주적인 목소리를 탄압하여 40년간 지속된 신정적인 세력과 민주적인 세력간의 긴장을 촉발시켰다.

혁명 여파로 미국과 이란 외교관계는 재빠르게 붕괴되었다. 호메이니의 묵인 하에 이란 학생들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포위하고 444일 동안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붙잡았다. 이들은 카터 미국 행정부에 암 치료를 위해 뉴욕에 가 있었던 이란의 왕을 그들에게 인도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이로 인해 정치적 지위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카터 대통령이 물러나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인질을 풀어주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1980년 사담 후세인의 이란 침략으로 피로 물든 8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옛 소련이 사담을 지원했던 이 전쟁은 결국 교착상태로 끝났지만 이란과 이라크에서 50만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이란은 아이젠하워 미국 행정부가 추진했던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이 과거 이란 왕에게 제공한 핵에너지 기술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란의 은밀한 핵 계획은 2002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현재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미 권좌에 있었고, 지정학적 상황이 크게 바뀌어 있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인데다 이라크 침공을 준비했다. 이 결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그 악명 높은 표현인 ‘악의 축’에 포함된 이란에 결국 상당한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유럽연합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로서 이란과 핵협상을 개시해야 했다. 나의 첫 대화 상대는 하산 로하니였다. 하산 로하니는 현재 이란 대통령이며, 그와 기초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러한 성과를 수년 전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았고, 사이드 잘릴리가 협상 대상자로 임명되면서 양측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잘릴리는 서방국가들이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매번 그 전쟁에서 자신이 다리 반쪽을 잃었다는 이야기로 회의를 시작했다.

로하니는 2013년 이란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국제사회는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화합하고 노력했다. 그 결과로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 (JCPOA)을 수립하게 되었고 이는 수십 년간의 비생산적인 적대감을 청산할 외교적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에 일방적으로 JCPOA의 시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새로운 제재를 가했고, 외국 기업들에게도 이란과 계속해 사업을 하면 2차적인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국제 무역에 있어 미국 달러가 가지는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 이 결과 미국은 인권 침해뿐만 아니라 중동과 그 밖의 지역에서의 이란의 불안정한 행동에 대해 유럽과 연합전선을 펼칠 기회를 버리고 말았다.

최근 미국의 후원으로 바르샤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을 분열시키고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추진하는 반이란연대를 확장시키려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이란의 붕괴를 촉발시키려는 것은 지난 40년의 시간을 고려해볼 때 현실적인 행동이 아니다. 서방 국가들은 이란을 적대시하여 강경파들에게 신뢰를 쌓아주기보다는, 지역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포괄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수십 년간 이란을 적대시한 결과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었지만, 최근에 있었던 소통과 협상은 역사적인 핵 협정을 가능하게 했다.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인지는 이미 분명하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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