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터키, ‘러시아판 사드’ S-400 도입… 올해 10월 실전 배치 계획
국제사회에서 무기 거래는 국가 간 우호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척도다.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받는 만큼 경제적 국익은 물론, ‘국가 방위’라는 안보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상호 대립하는 국가들끼리는 거의 무기를 팔지도, 사지도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무기 도입 현황을 따라가면, 각 나라들의 동맹 및 대립 관계가 얼추 그려진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터키의 러시아산 방공미사일 S-400 도입 결정은 예사롭지 않은 신호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동시에, 서방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미국에 있어 중동정책을 펴는 핵심 교두보이자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 완충지대였다. 주요 군사기술의 35%를 해외에 의존하는 이 나라가 미국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사들이는 건 당연했다. 2008~2017년 무기 수입액 76억8,100만달러(8조 6,918억원)의 절반가량인 35억1,000만달러(3조 9,772억원)를 미국에 건넸을 정도다. 같은 기간 러시아에서 수입한 무기는 3,200만달러(362억원)어치에 불과했다.
◇美패트리엇 성능 압도, 기술이전 조건까지
하지만 터키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대신, ‘러시아판 사드’로 불리는 S-400으로 방공망을 구축하는 길을 택했다. 오랜 우방 사이인 터키와 미국의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그리고 러시아와 터키가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실제로 △2016년 터키의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 억류(간첩 혐의, 지난해 10월 석방) △미국의 대(對)터키 경제제재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에 대한 이견 등으로 터키와 미국의 갈등은 점점 쌓여 왔다.
특히 S-400 문제로 두 나라의 대립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2017년 12월 터키가 S-400 포대 4개분을 25억달러(2조 8,312억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러시아와 맺은 이후, 미국은 틈만 나면 ‘철회’를 요구했다. 그때마다 터키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강행’을 천명했다. 얼마 전에도 양측은 충돌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장관은 “올해 7월 S-400을 인수해 10월에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자 찰스 서머스 미 국방부 대변인 대행은 “터키가 S-400을 도입하면 ‘중대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공급계약을 체결한 미국산 패트리엇 지대공미사일,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 F-35의 터키 판매를 취소하겠다는 으름장이었다. 이에 맞서 아카르 장관은 “미국이 F-35를 터키에 팔지 않는 건 위법행위”라고 반박했다.
터키가 미국의 압박에도 러시아 무기체계로 눈을 돌린 데엔 이유가 있다. 탁월한 가성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400은 400㎞ 밖에서 초속 4.8㎞로 이동하는 목표물을 최대 300개까지 포착할 수 있다. 초당 1.6㎞ 이하의 움직이는 목표물 100개가 한계인 패트리엇을 압도한다. 저고도 순항미사일, 전술탄도미사일은 물론, 군용기까지 모두 요격 가능해 사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F-35 등 스텔스 항공기마저 탐지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격은 5억달러(5,662억원)로, 패트리엇(10억달러)의 절반이고 사드(30억달러)와 비교하면 6분의 1에 그친다.
S-400이 터키를 사로잡은 요인은 또 있다. 지난해 11월 터키 대통령실 대변인은 “러시아가 방공미사일 경쟁 입찰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면서 ‘기술 이전’과 ‘공동 생산’을 꼽았다. “서방 동맹국의 제안엔 없던 조건”이었다고도 했다. 자국의 방산 능력 강화를 꾀하는 터키에는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작년 4월 “터키에서의 S-400 공동 생산, 기술 이전 등에 아무런 제한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미 싱크탱크인 외교정책연구소의 중동 디렉터 에런 스타인은 터키 현지매체 아흐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술 이전은 1970년대부터 터키 조달 정책의 핵심 구성 요소였다”고 말했다.
◇F-35 정보 유출, 나토 무기체계와 호환성 ‘우려’
그러나 미국의 거센 반발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F-35를 S-400와 동시 운용하면, F-35의 기밀 정보가 러시아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가장 큰 우려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S-400의 터키 배치를 “러시아의 나토 방공망 침투이자 F-35를 식별 가능케 만드는 ‘군사보안의 충격적 붕괴’”라고 본다. 전직 공군 중장인 데이빗 뎁툴라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 방공시스템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군사 전문가인 조지프 트레비식도 아흐발뉴스에 “터키가 S-400 작동법을 익히려면 러시아 인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러시아가 S-400 레이더에 F-35가 어떤 신호를 남기는지 등 모든 정보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토 무기체계와의 연계ㆍ호환성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트레비식은 “S-400은 나토의 기술표준과 맞지 않다. 기존 무기 시스템, 센서, 네트워크와 완벽히 통합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터키의 S-400 배치는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6일 “러시아와의 계약 파기는 부도덕한 일”이라며 철회는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WSJ는 중국, 인도, 터키 등으로 확산 중인 S-400을 ‘새로운 철의 장막’으로 표현하면서 “미국이 절대적인 제공권을 누리던 시절이 끝났다”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의 분석을 전했다.
문제는 터키에 대한 미국의 F-35 공급 여부다. 터키 싱크탱크인 러시아국제문제위원회의 티무르 아흐메토프 연구원은 “S-400 판매의 본질은 미국 기업의 글로벌 방산시장 점령을 차단하려는 ‘상업 및 사업’ 전략”이라며 “(미국에게도) 터키와의 F-35 거래는 단지 국방사업만이 아닌 상업적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판돈이 워낙 큰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국엔 성사될 것이라는 말이다. 터키와 주변 지역 정세도 러시아의 확장과 미국의 수성이 충돌하는 가운데,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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