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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 텔레파시가 생겨 타인의 맘을 읽는다면 유쾌할까?

입력
2019.03.1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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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합니다. 지식큐레이터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3>코니 윌리스 ‘크로스토크’ 

2001년 개봉한 미국 영화 ‘왓위민 원트’의 장면. 유명 광고기획자 닉 마셜(멜 깁슨)은 갑자기 여성들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경쟁 회사의 라이벌 달시(헬렌 헌트)에게 접근해 광고 아이디어를 훔치고, 사랑에도 빠진다. 영화 스틸
2001년 개봉한 미국 영화 ‘왓위민 원트’의 장면. 유명 광고기획자 닉 마셜(멜 깁슨)은 갑자기 여성들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경쟁 회사의 라이벌 달시(헬렌 헌트)에게 접근해 광고 아이디어를 훔치고, 사랑에도 빠진다. 영화 스틸

‘크로스토크’의 주인공 브리디가 일하는 휴대전화 회사 컴스팬은 초긴장 상태다. 컴스팬의 경쟁 업체 애플에서 상상도 못 할 기능의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애플이 새 아이폰을 출시하기 전에 그보다 훨씬 더 세상을 놀라게 할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브리디는 개인적으로도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매력적인 직장 동료 트렌트랑 남몰래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회사의 간부가 된 트렌트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만한 매력적인 남성이다. 트렌트는 브리디에게 연인끼리 서로의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간단한 뇌수술(EED)을 받자고 조르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시시콜콜 간섭하는 집안 분위기에 질린 브리디는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멋진 애인이 서로의 감정을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수술을 제안하자 선뜻 거부하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잖아! 나는 그 감정을 24시간 느끼고 싶다고!”) 결국 브리디는 가족과 친구 몰래 EED 수술을 받고 만다.


 크로스토크 

 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발행•444쪽•1만4,800원 

바로 이 시점부터 엉망진창 야단법석이 시작된다. 수술을 받고 나자 애인과 감정의 교감이 생기기는커녕 브리디에게 뜬금없이 텔레파시 능력이 생겨 버린 것. 처음엔 (모두가 질색하는) 괴짜 직장 동료 ‘C.B.’와 생각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더니, 나중에는 세상 사람들의 온갖 생각이 홍수처럼 브리디에게 밀려든다.

이 대목부터 ‘크로스토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생각(마음)을 읽는 일은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다. 평소 친하다고 생각하던 직장 친구의 마음은 알고 보니 정반대다. 자신도 은근히 사모하던 매력적인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리디를 “재수 없는 친구”라고 욕하며 불행을 비는 일이 다반사다. 그럴 법하다. “머릿속은 나쁜 생각을 뱉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니까.

소설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미 모두가 모두와 연결된 시대에 우리는 좀 더 밀착될 필요가 있을까. 예를 들어, 소설 속 어떤 등장 인물의 비전처럼 아예 “마음과 마음을 잇는 통신” 즉, 사람들이 서로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가능하면 세상이 더 행복해질까.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좀 더 연결되니까 세상이 정말로 20년 전보다 나아졌나.

크로스토크 작가 코니 윌리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가 강점이다. 아작 제공
크로스토크 작가 코니 윌리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가 강점이다. 아작 제공

올해 73세가 된 ‘크로스토크’의 작가 코니 윌리스는 ‘SF 수다쟁이’로 유명하다. 윌리스는 시끌벅적한 소통 가운데 서로 끊임없이 오해하는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키며 문제가 꼬여 가는 상황 속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그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 모든 ‘사태’와 ‘소동’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크로스토크’로 윌리스에게 호감을 갖게 된 독자라면, 그가 30년에 걸쳐서 써내려 간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에 도전할 차례다.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된 미래의 옥스퍼드 대학교 역사학도들이 자신이 연구하는 과거(흑사병이 돌던 14세기나 제2차 세계 대전 때)로 돌아가서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수다로 펼쳐지니까.

그래도 SF 소설인데 어렵지 않느냐고? 윌리스의 수다만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소설 독자 누구나 펼쳐서 읽을 만하다. 테크놀로지 시대에 인간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크로스토크’도 마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쓰고 ‘유브 갓 메일’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던 노라 에프런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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