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탈퇴 연기 요청 가능성 높아… 집권당 조기총선 거론
노 딜이냐, 연기냐, 아니면 총선이냐. 영국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수정합의안이 12일(현지시간) 또다시 부결되면서 영국이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다. 하원은 13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여부, 14일에는 ‘브렉시트 시기 연기’ 여부에 대해 각각 투표에 나선다. 워낙 상황이 유동적이지만 현재로서는 일단 ‘노 딜’을 피하고 탈퇴 시점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게 돼도 혼란을 잠시 피할 뿐 그 이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2차 투표에서 하원은 149표 차이(반대 391표ㆍ찬성 242표)로 테리사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이번에도 발목을 잡은 건 안전장치(백스톱) 조항. 지난 1월 중순 1차 투표에서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백스톱 때문에 영국이 영구적으로 관세동맹에 갇힐 수 있다며 반대표를 던졌고, 이에 메이 총리는 재협상을 통해 영국이 원할 경우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있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1차와 달리 가결 가능성이 점쳐지는 듯 했으나, 투표 직전 제프리 콕스 법무장관이 “영국이 유럽연합(EU) 동의 없이 합법적으로 백스톱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다”는 법률 검토 결과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메이 총리가 의회 설득에 또다시 실패해 정치력에 타격을 입으면서, 앞으로 브렉시트 향방은 의회 결정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
합의안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주요 외신들은 29일 예정대로 ‘노 딜 브렉시트’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보수당 내 일부 강경파를 제외하고는 영국 정가에서 노 딜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13일 투표를 통해 ‘노 딜’ 브렉시트를 선택지에서 제거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4일 투표에서 EU에 연기 요청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메이 총리는 투표를 앞둔 13일 하원에서 열린 총리 질의응답에서 “나는 좋은 합의안을 가지고 EU를 떠나고 싶다”며 ‘노 딜’에 반대표를 던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EU도 수십억 파운드의 재정분담금을 추가로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연기 요청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이렇게 시간을 번다고 한들 의회 다수 지지를 얻을만한 합의안을 만드는 게 어려울뿐더러, EU가 추가 협상에 응할지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이 이미 “세 번째 협상은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고, 부결 직후에도 EU는 브렉시트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물론 메이 총리가 ‘노 딜’을 우려하는 보수당 내 온건파 및 노동당과 공조해 ‘소프트 브렉시트’ 안을 마련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게 EU에서는 탈퇴하되 유럽자유무역연합 회원국으로 남아 경제협력은 유지하는 ‘노르웨이 모델’이다.
영국 정치권에서는 조기총선도 유력한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브렉시트 방안을 두고 의회가 사분오열 하니 ‘협상안’ 대신 아예 ‘정치판’ 자체를 새로 짠다는 발상이다. BBC는 “집권당 내부에서도 조기총선 얘기가 오가고 있다. 의원들이 메이 총리의 사임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 역시 부결 직후 “합의안에 명백히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메이 총리는 단지 시간을 끌고 있다”면서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한편 2차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철회' 여부를 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는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앞서 메이 총리는 여러 차례 2차 국민투표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도 “브렉시트를 최대한 연기하더라도 7월 초까지만 가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만큼,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