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한국 바둑 최강과 일본 천재 소녀 
 #어린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와 박세리, 김연아 등을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는 [꿈을 만나다] 시리즈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바둑 최강 박정환 9단과 일본의 바둑 천재 소녀 나카무라 스미레가 지난 7일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지도 대국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출중한 바둑 실력과 깜찍한 외모로 화제를 모은 일본의 바둑 천재 소녀 나카무라 스미레(10)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박정환(25) 9단을 가장 좋아한다. 박 9단과 같은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국기원에서 박정환을 마주한 스미레는 수줍어하면서도 우상을 만나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반상 외에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박정환이지만 스미레의 만남 요청에는 흔쾌히 응했다. 지난 1월 일본기원의 영재 특별채용으로 입단한 스미레는 연수를 받고 4월 1일 자로 정식 프로기사가 된다. 2009년 3월 2일생으로 입단 시점 나이는 10세 32일이 된다. 이는 후지사와 리나(21)가 가지고 있던 11세 6개월을 넘는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스미레에게 박정환의 첫 인상을 묻자 한참 생각하더니 “상냥할 것 같은 이미지”라고 쑥스럽게 말했다. 박정환은 스미레가 자신을 롤모델로 꼽은 데 대해 “나를 안다는 것만으로 신기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맙고 좋았다”면서 “스미레의 존재는 입단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도 보고 싶었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스미레의 어머니 나카무라 미유키씨는 휴대폰을 꺼내 박정환에게 보여줬다. 바탕화면에는 박정환이 스미레와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미유키씨는 “작년 여름에 한 대회에서 마주쳐 기념 촬영을 요청했다”고 떠올렸다. 그 때만 해도 박정환에겐 스쳐 지나는 꼬마 팬 중 한 명이었을 터. 그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멋쩍게 웃었다.

지난해 기념촬영한 사진이 담겨 있는 스미레 어머니의 휴대폰 바탕화면을 보고 웃음 짓는 박정환과 스미레. 홍인기 기자

스미레는 박정환과 마주 앉았지만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부끄러워서 그런다. 박 사범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더라”며 멍석을 깔아주자 스미레는 용기를 내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렇게 강해졌어요?” 눈높이 답변을 위해 잠시 고민하던 박정환은 “꾸준함이 필요한 것 같다. 노력해도 안 되고 좀 막힐 때가 있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기원 관계자가 스미레에게 통역을 해 주려 하자 미유키씨는 “스미레가 (한국말을)다 알아듣는다”며 웃었다. 대화가 술술 풀려가자 신이 난 스미레는 “유튜브를 통해 박정환 9단이 대국하는 걸 본 적 있다. 맥심커피배도 봤다. 랭킹도 매달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본다”며 열혈 팬심을 드러냈다.

둘은 바둑판 앞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박정환은 2013년 12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무려 59개월 연속 1위 자리를 지킨 국내 최강 기사. ‘인간 알파고’로 통하는 그의 무결점 바둑은 정평이 나 있다. 긴장되는 표정으로 박정환과 짧게 수를 주고 받은 스미레는 “진짜(혼모노ㆍ本物)를 봤다”면서 “한국에서 가장 잘 두는 프로기사의 수를 직접 보니 놀랐다”고 말했다. 박정환은 “조그만 손으로 잘 두는 거 보니 너무 신기하고 귀엽다”고 미소를 지었다.

스미레의 아버지 나카무라 신야는 프로기사이고 어머니도 아마추어 강자다.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 3세 때 바둑돌을 잡고 부모가 운영하는 바둑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해 2015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종진 9단의 바둑도장에서 유학을 했다. 박정환도 여섯 살 때 바둑돌을 잡고 만 13세에 입단, 17세에 최연소 9단에 올라 그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를 목에 건 천재 기사다.

박정환과 스미레. 홍인기 기자

박정환은 “얼마 전에 크라운 어린이 명인전 중계를 봤는데 스미레가 지고 우는 걸 봤다. 임하는 자세가 좋다”고 칭찬했다. “우승하고 싶었는데 져서 다음날까지도 분했다”는 스미레의 승부욕은 유명하다. 어머니는 “오늘도 오전에 연습 대국에서 져서 울고 왔다”고 거들었다. 울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난다니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는 스미레는 박정환과 함께 먹을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몇 번이라도 같이 먹고 싶다”며 해맑게 웃었다.

스미레는 4월 중순 압구정 기원에서 열리는 여류최강전에 출전할 예정이다. 박정환은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도쿄 일본기원에서 열리는 월드바둑챔피언십 2019에서 대회 3연패에 도전한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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