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전혀 연관성 없이 보이는 선들이 이어져 경이로운 밑그림이 되기도 한다. 2002년 미스코리아 미스골든듀 김소윤 씨의 지난 이력들이 그렇다. 학부시절 전공은 체육, 첫 직장은 유명 부동산 컨설팅 회사였고 퇴사후 사업은 커피 전문점 운영. 지금은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로 꼽히는 르 꼬르동 블루와 나카무라 아카데미 출신의 푸드 크리에이터다. 갓 구운 빵처럼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그의 이야기다.
HI : 미스코리아 대회 직후 출전한 미스아시아퍼시픽대회에서 무려 4관왕을 차지했었네요.
김소윤(이하 김) : 민낯으로 다니면서, 다른 나라 후보자들의 메이크업을 많이 도와줬어요. 그게 점점 입소문이 나서 아침마다 내 방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어요. 다른 건 몰라도 우정상은 그것 때문에 타게 된 것 같아요. 또 대부분 특기로 발레나 전통무용을 준비했는데, 저는 에미넴의 노래에 맟춘 랩과 힙합 댄스로 좌중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HI : 재능과 ‘끼’가 다분했는데, 연예계로 진출할 생각은 없었나요?
김 : 관련 기회는 많았어요. 하지만 미스코리아로 잠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해서, 무작정 배우 일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때때로 현실에서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땐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 경제 서적이 흥미를 끌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기본자금이 있어야 실행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얻었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HI : 첫 직장 이력이 독특해요. 세계적인 부동산 전문회사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었나요?
김 : 첫 직장에 대한 감사함과 자부심이 있어요. 이알에이 코리아(ERA KOREA)란 부동산 컨설팅 회사의 프라이빗 뱅킹(CS&PB) 부서에서 상위 5% VVIP를 담당하는 일을 했어요. 주로 대기업이 보유한 대형 빌딩 매각 등의 컨설팅에 참여했었습니다.
HI : 일 배우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김 : 입사하면 미국 본사 시스템의 세일즈 교육을 받아요. 세계 경제•부동산과 관련된 일간지들을 매일 읽는 건 기본이고, 세미나 참석과 세일즈 심리학 등 다양한 공부를 합니다. 그 중 가장 많은 도움이 됐던 것은 수많은 협상 테이블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에요. 자연스럽게 신뢰감을 쌓는 방법으로 독점 계약도 곧잘 해 선배와 상사에게 인정받았어요.
HI : 커피 전문점 운영은 어떤 과정으로 도전하셨나요.
김 : 그러고 보니 올해로 벌써 9년째네요. 직장 생활하는 3년 가까이 대중교통만 이용하며 악착같이 월급의 80%를 저축했어요.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카페가 많지 않았고, 주로 강남권 사모님들이 자신의 건물에 카페를 차리곤 했죠. 그 일을 도와주다 보니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배운 상권 분석으로 포스코 사거리 실 평수 15평 자리에 조그마한 커피 전문점을 차렸습니다.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그래도 부족한 자금은 집에서 조금 더 보태주셨죠. 다행히 빚은 사업 시작한지 정확히 1년 안에 다 갚았답니다. 휴…, 그땐 숨 쉴 시간조차 부족했어요. 혼자서 카페 4개에 백화점 식품업과 요식업까지 모두 6개의 사업을 병행했었거든요.
HI : 손에 상처가 제법 많아요. 요식업에서 멈출 법도 했는데, 왜 하필 요리에 또 도전했는지 궁금합니다.
김 : 엄마는 과수원 집안의 막내며느리라 한식 전문가이시고, 오빠도 요리 학교를 나와 요식업을 5개나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가족들의 영향을 받았겠죠. 요리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이잖아요. 게다가 불과 물을 다루는 것이라 굉장히 위험하고요. 주방에서는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다치기 쉬운데, 확실히 체력과 집중력이 중요해요. 그러나 저는 이 일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처음부터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었어요. 학부때 체육을 전공했던 자기 관리 덕을 지금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웃음)
HI : 본인만의 요리 철학과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요.
김 : 결국 요리는 다 같다고 봐요. 요즘 요리들은 글로벌화, 즉 퓨전이 됐기 때문이죠. 여기에 한국인의 정서와 나만의 개성까지 적절히 접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요리라…, 예전에 첫사랑이 해줬던 떡볶이가 참 맛있었어요. 요리는 결국 마음이 하는 일이잖아요. 다시 남자친구가 생기면 젤라또 아이스크림까지 포함한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코스 요리를 선사해주고 싶습니다.
HI : 현재 운영중인 유튜브 채널 소개 좀 부탁드려요.
김 : 유튜브 채널 ‘소윤키친’에선 프랑스 요리와 제과 제빵을 다뤄요. 프랑스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채널은 의외로 많지가 않더라고요. 고급 음식이라 느껴지는 거리감을 깨고, 대중에게 친근함을 선사하고 싶어 운영하게 됐어요. 앞으로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플레이팅 방법과 그릇에 관한 이야기도 해보려고요. 요리와 관련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푸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구독자 수가 많지 않지만, 1000명 넘으면 구독자 10분에게 직접 만든 케이크 10개를 보내드릴게요.
HI : 이대로 멈추시지 않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도 살짝 알려주시겠어요.
김 : 한 끼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게 얼마나 정을 담고, 얼마나 정을 들게 하는 기적 같은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만의 브랜드를 통해 후배 양성과 교육은 물론, 소외된 아이들과 오랜 정을 나눌 수 있는 다채로운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김수현(2006년 ‘미’ 미스한국일보) 녹원회 이사 crescent0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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