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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국뽕’ 너머의 독립운동

입력
2019.03.1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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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도’는 <한국일보>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7월 3일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대통령직속 3ㆍ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지난해 7월 3일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대통령직속 3ㆍ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언제 일본에게 패배감이 드는가. 야구ㆍ축구 경기에서 졌을 때, 위안부 같은 과거사 문제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할 때, 분노나 아쉬움이 쏟아진다. 이웃을 끊임없이 미워하고, 경쟁하고, 이겨야 하는 상황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책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우리의 고단한 역사책은 말하고 있다.

나는 국가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지만, 어떤 뉴스를 읽을 때면 일본에게 큰 패배감을 느낀다. 우선 일본에선 건물주가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고, 세입자가 거부하면 주변 건물의 시세자료를 모아 소송을 걸어야 한다. 재판소에서도 가게가 수 년간 손님들을 모아온 노력을 인정하며, 시세가 보통 주변보다 15% 이상은 싸야 인상이 허용되고 인상되어도 5% 수준이라는 것. 일본은 대기업 노조들이 하청ㆍ협력업체 직원들과 임금격차가 많이 벌어지지 않도록 임단협 협상에서 배려하며 대기업ㆍ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크지 않다. 또 일본은 각 지역 국립대들이 명문대로 자리 잡아 가산을 탕진해가며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도쿄로 몰려들 필요가 없다.

나는 이 몇 개의 사안만으로 ‘좋은 국가’가 그려진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 팔할이 해결 될 것처럼. 불가항력의 요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단지 너무 이기적이어서 채택하지 않은 제도들.

독립운동 기획 취재를 하며 느낀 바는 독립운동은 맹목, ‘국뽕’(국가주의와 마약의 합성어)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마다 ‘뜨거운 이상향’을 품었고, 그 1차적 수단이 독립운동이었을 뿐. 만약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체제보다 남의 민족이 우리 민족을 지배하는 체제에서 더 자유롭고 풍족한 시스템이 가능하다면야, 민족주의는 언제든지 벗어 던질 수 있는 허상일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23년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의열단선언)에는 “설혹 강도 일본이 돌연히 불보살이 되어 일조(一朝)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還付)하며, 내정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撤還)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奉戴)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라고 돼 있다. ‘불보살’ 같은 통치가 된다면, 독립의 이유는 외세 통치 자체보다 과거의 압제에 대한 치욕의 기억에서 찾는다. 암살ㆍ파괴ㆍ폭동 외에 선택할 수단이 없음을 밝힌 의열단선언은 그 시대 젊은이들이 가슴을 뜯으며 목숨을 걸게 만들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족주의’를 신성 불가침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1928년 창단 9주년에 맞춰 발표된 의열단의 21개 강령(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7권)에는 ‘여자의 권리를 정치ㆍ경제ㆍ교육ㆍ사회상에서 남자와 동등으로 할 것’ ‘소수인이 다수인을 박삭(剝削)하는 경제 제도를 소멸시키고 조선인 각개의 생활상 평등의 경제 조직을 건립 할 것’ ‘의무교육, 직업교육을 국가의 경비로 실시할 것’ ‘소득세는 누진율로 징수할 것’ 등이 포함돼 있다.

100년 전 울려 퍼진 독립선언문은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고 했는데, 지금 후손들은 민족 스스로 살아가고 있지만 불평등 속에 신음하고 있으니 큰 뜻에는 닿지 못한 것 같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 마지막 문장은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우리를 박삭하는 이기심, 넘치는 혐오들이라니. 일본에게 졌을 때 원통해야 할 것은 스포츠 경기만은 아니어야 한다.

이진희 기획취재부 차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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