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북부 볼로냐 지역의 300명의 아이들은 12일 오전(현지시간) 여느 때와는 다르게, 유치원에 등원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야 했다. 학부모들이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부터 국가 전역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 백신 10종을 맞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등교 금지 조치를 착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이탈리아 각급 학교의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 시한이 전날 만료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6세 미만의 영유아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홍역, 소아마비 등 의무 백신 10종의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를 학부모가 제출하지 않을 경우 원생의 등교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6~16세 학생들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등교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관련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학부모에게는 최대 500유로(약 65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가 위치한 라치오주(州)의 교원단체장인 마리오 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다른 수십 명의 아이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NYT에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유럽 내 ‘반(反) 백신 풍조’의 확산으로 백신 접종률이 하락, 전염병 발생 건수가 급증하자 어린이들에게 홍역 등 10종의 예방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효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몇 년 새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영유아 백신 접종률이 크게 하락해 과거 유행했던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다. 작년 유럽 전역에서 발병한 전체 홍역 환자 중 4분의 1 가량이 이탈리아에서 나왔을 정도다.
2017년 야당 시절 전임 정부가 제정한 백신 의무화 법안에 반기를 들었던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립 정부는 작년 6월 출범 이후 백신 의무접종 기준을 완화하기도 했으나, 의료계와 학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기존 방침을 철회했다.
이후 지난 11일까지 일종의 유예기간을 둬 학부모들에게 예방접종을 할 기회를 주었고, 유예 기간이 종료되자 이날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탈리아 보건 당국의 단속 결과 첫날인 이날 중부 토스카나 주의 해안 도시 리보르노에서 허위 백신 증명서를 제출한 학부모 2명이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신을 둔 논란을 계속될 전망이다. NYT에 따르면 포퓰리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공동 설립자는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주장한 바 있고, 현 부총리 역시 야당 시절 이번에 적용된 백신 접종 강제 법안에 대해 반대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3년 전 80% 선에 그쳤던 이탈리아 영유아의 백신 접종률이 최근 WHO의 권고치인 95%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는 이탈리아 보건부의 발표처럼, 강제 법안으로 인해 접종률은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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