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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음건강, 돌봄을 넘어 연결로

입력
2019.03.1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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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서울시는 마음 건강을 향후 주요 정책 의제로 설정하고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을 열었습니다. 이런 자리는 적지 않게 있었지만 주목할 점은 정신건강이 아닌, 마음 건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단어의 정의는 뭘까요? 사실 아직 사회적 합의가 분명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각기 느끼는 바도, 용례도 다릅니다. 정신건강을 좀 더 부드러운 어감으로 풀 때 사용하기도 하고, 더 넓은 대상을 포함한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고, 정신건강과 교집합은 있지만, 분명히 다른 영역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난 몇 년, 사용량이 급증했음은 분명합니다. 특히 민간보다 공공 영역에서 ‘마음 건강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회자되는 양에 비해, 실제 정책으로 시행되는 지자체는 아직 많지 않고, 방향도 균일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기존 정신건강 서비스의 홍보에 집중하기도 하고요. 생애 주기별로 대상을 다각화하는 곳도 있습니다. 지원금을 제공하는 곳도 있지요. 물론 모두가 참 필요한 것들이고, 반가운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마음 건강 정책에 꼭 필요한 기능 하나가 빠져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연결고리’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다섯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우울감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더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한 대학생은 크게 다툰 몇 주 뒤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죄책감, 한 40대 직장인은 인간관계에서 도무지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아서, 타국에서 와 고립감을 겪는 다문화가정 주부, 전 직장의 임금체불에 괴로움이 점점 커지는 청년도 있습니다. 은퇴 후 인생 2막을 위해 부단히 도전하다 결국 가족 몰래 뒷산에 가시는 60대 아버님.

이들이 모두 같은 ‘표현’을 한다고 해서, 동일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까요? 분명 이들 중 몇 분에게는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접근이 핵심이 되겠지요. 하지만 또 다른 이에겐 혼자서 감당하지 못하는 임금체불의 현실적 방법과 도움이, 60대 아버님에게는 혼자 애쓰지 않도록, 모르고 계셨던 공공의 여러 기회를 연계해 드리는 것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현실의 벽을 뚫어낼 수 있는 타개책이, 마음 건강의 개선까지 연쇄작용으로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결괏값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측면은 마음 건강 ‘케어’에서 조금 더 확장된, ‘허브’ 기능이라 이름 붙여 봅니다. 누구나 찾아와 마음을 터놓는 진입 방식은 같지만, 이후에는 다른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정신의학,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이에게는 해당 기관을, 다문화ㆍ장애ㆍ성 소수자ㆍ노동ㆍ주거 등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고통에는 그에 맞는 사회적 자원들을. 때로는 두 가지가 병행될 수 있게. 이렇게 최적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조속히 이어 주는 대응은 공공이 가진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아니면 쉽지 않은 역할입니다.

겨우 7년입니다만 상담가로 살아오며 느낀 게 있습니다. 때로 저를 찾아온 분들에게, 제가 아닌 존재들을 이어 주었을 때 오히려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때도 있다는 것이죠. 그 존재들은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싱글맘 선배이기도 했고, 기업 HR 담당이기도 했으며, 사회로 나와 네트워크를 쌓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고통이라는 모두 같은 결괏값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쪽 깊숙한 곳에는 각기 다른 원인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어쩌면 마음건강 ‘정책’이라는 단어의 진짜 효용은, 시민들의 각기 다른 아픔에 대해 공공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얼마나 다채롭게 대응하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될지 모르겠습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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