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아닌 법관이다. 무죄가 하나라도 나면 손해배상 소송부터 재정신청까지 무조건 진행한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확실한 혐의만 기소해야 한다.”
사법농단 수사가 막바지로 향하던 지난달 말 서울 서초구 검찰청. 검찰 수뇌부가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을 향해 묵직한 한 마디부터 던졌다. 올 초 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소를 전후해서도 당부했던 메시지이지만 최종 기소 범위를 앞둔 수사팀에게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전체 법관의 약3%인 100여명의 현직 법관을 수사했지만 무분별하게 기소를 했다가는 모든 책임을 검찰이 질 수밖에 없는 엄중한 상황에 대한 고민의 한 단면인 셈이다.
검찰 수뇌부는 수사 착수 직후부터 사법부를 향한 검찰 수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수차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이후 법원 내에서는 “지금은 검찰이 칼을 쥐고 있지만 상황은 곧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등 심상치 않은 기류마저 포착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특히 기소 이후 재판과정을 크게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수뇌부는 기소 직전 “기소 대상 법관들의 편일 수밖에 없는 동료들이 사법농단 재판을 진행한다. 개별 사안에 대한 보수적인 법적 판단은 물론, 재판 절차적으로도 검찰에 유리한 진행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일부 무죄라도 나면 앞으로 옷 벗어도 변호사 개업은 못할 것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당부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법농단 재판 이후 실제 민형사 소송이 뒤따를 수도 있다고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해당 법관들이 수사 검사를 향해 손해배상 민사 소송은 물론, 피의사실 공표 혐의를 시작으로 형사 소송이 시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죄를 받은 법관이 수사 검사를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이 불기소를 결정하더라도 재정신청을 통해 고등법원에서 검사를 기소하는 우회적 반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신청이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를 말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총장 등 검찰 수뇌부는 무죄 시 재정신청과 민사 소송 등을 통해 법원이 대대적 역공과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팀이 법관 기소범위를 최소화한 데는 검찰 수뇌부의 이런 우려와 신중한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추가 기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권순일 대법관 등이 명단에서 일단 빠진 것도 총장 등 수뇌부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수사팀은 이와 관련 지난 5일 “오늘 기소 범위는 (총장 등) 보고라인 통해서도 취지에 공감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남은 수사도 최대한 신중하게 기소 범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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