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절은 종교 활동이 이뤄지는 건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풀이가 가능하지만 이를테면 주지 스님이나 주류를 가리키는 말로도 이해 가능하다. 중이 떠나면 된다는 표현은 다른 절로 가면 된다는 얘기다. 파계하지 않는 한, 한 곳 사찰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승려이기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결국 이 속담은 지금 있는 절의 승려들과 마음이 안 맞으면 마음 맞는 절로 옮기면 된다는 뜻 정도이다. 이 속담의 참뜻이 궁금해서 한 말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 시설에는 성스럽게 구별된 공간이 있고 종교 의식을 주관하는 승려가 있으며 그곳을 찾아 종교 활동을 하는 신자가 있게 마련이다. 위 속담은 이 중에서 신자를 빼고 다른 둘만 가지고 얘기한 것이다. 하여 신자까지 넣어서 애기하면 이 속담 외로도 “절이 싫으면 신자가 떠나면 된다”, “중이 싫으면 신자가 떠나면 된다” 등을 구성해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절은 좋은데 승려가 싫으면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절을 나라로 바꿔보자. 나라는 좋은데 정치인이 싫으면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꼭 정치인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자기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어온 장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법 된다. 족벌 언론이 그러하고, 법을 수호한다는 법조인 중에도 그런 이들이 꽤 있다. 우리나라를 살찌워온 주력이 자신이라고 부르대는 세습 재벌도 빠뜨릴 수 없다. 이들은 참으로 싫은데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좋다면, 그런 시민들은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몇 가지가 가능할 듯하다. 하나는 그럼에도 내가 떠나는 것이다. ‘헬조선’이란 표현이 잘 말해주듯, 계속 있다가는 그들로 인해 나라마저 싫어질 듯하니 그 전에 차라리 떠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다른 방도로는 그들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잘못이 저들에게 있는 만큼, 나라를 사욕 실현의 발판으로 이용해온 저들이 떠남이 맞는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떠나는 거야 여건이 되고 결심이 서면 금방이라도 실행할 수 있지만 힘만 있는 저들을 떠나게 하는 건 나 혼자 힘만으론 난망이다. 촛불혁명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또 시민들의 인내가 임계점에 달해야 비로소 일어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러한 대안을 모색해봄직하다. 저런 함량 미달의 존재들이 내가 좋아하는 이 나라에 빌붙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의 결을 일신해가는 길이 그것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다. 게다가 시간이 꽤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실현되면 무척 오랜 세월 동안 효력이 발휘된다는 큰 이점이 있다. 익히 취해봄직한 길이라는 얘기다.

사회의 결이라 함은 사람으로 치자면 체질과 같은 것이다. 체질은 종종 이성이나 의지에 앞서기도 한다. 하여 분노나 증오 따위가 체질에 스며들면 여간해서는 도려내기 어려워진다. 내 안에 이성의 목소리가 충분해도 막말이나 가짜 뉴스 등에 끝내는 영향 받는 이유다. 인문의 향기가 스며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일지라도 내 속을 불편케 하면 쉬이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손해가 된다거나 귀찮으면 안 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인문을 머금은 체질은 그렇지 않다. 결국에는 나를 이성의 자장에서, 지성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문제는 체질 개선의 길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을 장시간에 걸쳐 꾸준히 기울였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익숙함을 떨궈내는 불편함과 관성을 거스르는 고충을 감내해야 하고, 성과가 쉬이 드러나지 않아도 지치거나 실망하지 않는 근성과 굳은 의지 등을 고루 갖춰야 한다. 그래서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체질 개선이다.

한 개인의 체질을 바꾸는 데도 이러하니 한 사회의 체질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꼭 100년 전 5월의 어느 날, ‘광인일기’란 소설을 통해 사람을 잡아먹는 봉건 예교(禮敎)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라고 절규했던 노신의 심정이 절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일상에서, 또 영혼과 신체에서 중국사회의 기본 체질이 된 봉건 예교를 거둬내는 과업의 실현은 봉건 예교에 아직 잡혀먹지 않은, 곧 물들지 않은 아이를 지키는 길밖에 없다는 그의 외침이 사회 체질의 개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일러준다. 그럼에도 내가 떠나지 않는다면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라의 주인인 우리 시민이 좋아하는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구제해야 한다.

이번 칼럼을 끝으로 독자들과 이별을 고한다. 그간의 칼럼이 우리 사회의 결을 바꾸는 데 얼마큼의 기여를 했는지 정말이지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지난 4년 가까이 귀한 지면을 내어준 한국일보에 감사를 표한다. 또한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제현께도 감사를 드린다. 실현 난망한 소망일지라도 나날의 삶이 선물이 되는 사회를 꿈 꾸어본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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