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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CJ 사외이사 출신 장관

입력
2019.03.10 18:00
수정
2019.03.10 21:44
30면
0 0
[저작권 한국일보]지평선_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평선_신동준 기자

8년 전쯤 ‘CJ라이프’라는 우스갯말이 돈 적이 있다. 아침에 CJ 계열 체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CJ가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현실을 빗댄 단어였다. 한국인의 생활, 특히 문화 영역에서 CJ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CJ 기업 중 특히 CJ ENM은 영화 방송 공연 게임 홈쇼핑을 아우르는 국내 초거대 문화 기업이다.

□ CJ ENM은 케이블채널만 tvN 등 16개다. 뉴스를 제외한 모든 방송콘텐츠를 다룬다. 자회사인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시가총액이 2조5,000억원대다. 한때 MBC에 따라다닌 ‘드라마왕국’ 수식은 이미 스튜디오드래곤에 넘어간지 오래다. 영화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여전히 충무로의 강자다. 최근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역대 흥행 2위 영화 ‘극한직업’을 선보였다. 대작 뮤지컬의 십중팔구는 CJ ENM이 관여돼 있다.

□ 청와대가 박양우 전 문화관광부 차관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지명했다. 관료 출신인 박 후보자는 2014년부터 CJ ENM 사외이사 겸 감사를 맡고 있다. 보수 성향 네티즌들은 “영화 ‘화려한 휴가’,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처럼 좌파 콘텐츠를 제작한 CJ ENM의 사외이사이니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딱 맞는 인사”라고 비아냥거린다. 영화계는 대자본을 편든 사람이라는 날선 반응이다. 박 후보자가 제작-투자-상영이라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시장을 독과점화한 CJ ENM의 이익을 대변해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선 CJ ENM이 정부 테마주가 됐다는 농반진반 말도 나온다.

□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계 인사들은 박 후보자가 새 장관 후보로 거론됐을 때부터 강한 우려를 청와대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계에선 2006년 노무현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만큼이나 배신감을 느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대기업 CJ ENM의 사외이사가 문체부의 수장이 되는 상황은 쓴 웃음을 짓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새 장관을 통해 어떤 문화정책을 펴겠다는 비전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은 점이 실망스럽다. 청와대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장관으로 지명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문화의 앞날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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