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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대정신

입력
2019.03.1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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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사실,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혼란스럽고,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념,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힌 와중에 치열하고 절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대개의 경우 주어진 몫이다. 그러나 시점을 조금 멀리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는 언제나 그 시점을 규정짓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잔인하리만큼 준엄하게 흘러왔다. 중세시대, 대항해시대, 제국주의 시대, 산업혁명 시대, 미소 냉전의 시대....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 명칭들이다. 그리고 그 시대 명칭 속에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담은 시대정신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그 시점의 시대정신을 선도하고, 적어도 뒤처지지 않은 국가와 민족에게는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융성이 주어졌고, 반대의 경우에는 비극적인 굴종과 속박이 주어졌다. 공동체 운명은 기본적으로는 그 구성원들 각자의 능력과 노력의 집합적 결집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그 공동체의 번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지배하는 이념과 신념이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에게는 결국 노예의 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19세기 후반 실사구시의 개혁과 개방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에 조선의 왕실과 지배계급으로서 사대부는 그 시점의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선택을 했고 이는 국가의 멸망과 민족의 비극적 굴종으로 이어졌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고 국가 구성원들의 절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소유와 거래의 대상인 노비로서 살아야했던 국가체제가 지속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남는다. 조선이 그대로 부강한 국가로 독립을 지키면서 근대 산업국가로 성장하고 이후 내생적인 시민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의 현재로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가정이다.

이처럼 공동체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정신의 발견과 선도는 결국 그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념과 가치가 무섭게 충돌하는 소용돌이 속의 현재라는 시점에 국가와 민족이 올바른 시대정신의 방향으로 무겁게 한 걸음씩 진보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각자의 건전한 이성이 깨어 있어야 하고, 그 이성들이 정치 과정을 통해 건강하게 결집될 수 있어야 한다.

2016년 4월 이후 지금까지 3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역사상 어느 시기에 비추어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비극적인 국가적 재난사고에 이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대대적인 적폐청산, 탈원전 정책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 북한 비핵화와 체제 전환을 둘러싸고 숨가쁘게 진행되는 국제정치, 한미동맹의 지속 여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경제정책, 국내 정치과정에서 언제나 중요 변수로 등장하는 검찰의 역할과 사법부의 독립 등. 하나하나의 사건만으로도 공동체의 질서와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줄 사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법학자이자 법률가로서 지난 3년 간 이 지면을 통해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정리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매우 준엄하였지만, 동시에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었다.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하였으나 사안의 민감함으로 인해 혹시나 상처를 받는 독자가 있었다면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부디 그 고민과 노력들이 지금 이 시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올바르게 형성되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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