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향후 한반도 비핵화 논의와 관련해 유관국 공동 로드맵 작성과 다자 감독체제 구성을 제안했다. 합의가 무산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자체를 긍정 평가한다면서도 결국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킨 것이다.
왕 국무위원은 8일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고 있는 베이징(北京)의 양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국의 역할과 기대를 묻는 질문에 “공동으로 만드는 로드맵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각 측이 동의하는 감독체제 아래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비핵화 로드맵을 확정하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 중국이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왕 국무위원의 이날 발언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커질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북미 정상 간 합의 무산의 이유로 비핵화 개념에 대한 입장 차이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비핵화 로드맵과 이를 이행하는 과정 모두에 중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의 참여를 제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로드맵 작성에 참여할 국가의 범위나 감독체제 참여국과 운용 방안 등을 설명하진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비핵화 논의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만은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제안은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안한 다자간 평화체제 구축 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일 수 있다. 북미 양국이 비핵화 및 상응조치를 이행해나가는 과정이 평화체제 구축 논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미국이 ‘빅딜’을 제안한 상황에서 다소 수세에 몰린 북한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의미가 내포된 제안이기도 하다.
다만 북미 양국이 공히 중국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제안이 수용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왕 국무위원의 이번 제안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의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긍정 평가한 직후 나온 것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중국 역할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 왕 국무위원은 이날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ㆍ안정 유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20여년간 노력해왔고 다음 단계로 중국은 각국과 정해진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공헌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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