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타이난(台南)은 2월에도 훈훈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타이난에 인접해 기차를 환승하는데, 기차역 바닥이 눈에 띈다. 모자이크 타일로 이곳이 저어새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타이난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월동지다.
얼굴이 검고 주걱 같은 부리를 가진 저어새는 영어로 ‘Black-faced Spoonbill’ 즉, ‘검은 얼굴 숟가락 부리’라고 불리고, 중국어로는 ‘흑면비로(黑面琵鷺)’라고 한다. 흑면은 검은 얼굴을, 비는 악기 비파를 의미한다. 저어새의 부리를 이쪽 사람들은 비파를 닮은 것으로 본 모양이다. ‘흑면비로’라고 미리 대만어로 적어온 메모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니 곧바로 알아듣고 저어새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나무로 소담하게 지어진 안내소 겸 교육센터가 있었고, 밖으로 나가니 드넓은 갯벌이 눈앞에 펼쳐진다. 관람객용으로 설치되어 있는 망원 스코프에 눈을 대니 마도요, 붉은발도요, 제비갈매기 등 여러 물새들이 보인다. ‘우리 동네’ 새만금에서 보던 새들을 대만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센터 건물 안에 저어새 현황판이 있었다. 2018년 세계 동시 조사로 발견된 저어새가 3,941마리, 그 중 2,195마리가 대만에서 발견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4,000마리도 채 되지 않는 저어새의 50% 이상이 대만에서 생존하는 것이다. 갯벌을 지킨 덕분이다. 현황판에는 매일 관찰되는 저어새 개체수가 업데이트 되고 있었는데, 내가 갔던 날은 안개가 끼어 저어새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전날에는 200마리가 넘는 저어새가 보였다고 센터 직원(자원봉사자)이 말했다. 단체로 견학 온 대만 청소년들 틈에 끼어 앉아 함께 교육용 영상을 보았다. 저어새가 어떤 새인지, 저어새를 지키기 위해 대만 정부와 시민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함께 새만금을 둘러보았다. 아직 저어새는 오지 않았지만, 곧 대만에서 날아 올 것이다. 대만에서 겨울을 보내는 저어새는 봄이면 한반도로 날아온다. 서해안의 섬에서 알을 낳고 인근 갯벌이나 습지에서 새끼를 키우며 여름을 난다. 가을이 되어 한반도가 추워지면 저어새는 다시 대만과 홍콩 등 남쪽 나라로 내려가 겨울을 보낸다. 수만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저어새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저어새의 고향인 한국 땅은 너무나 척박하다. 간척으로 무참히 파괴된 새만금에 적은 면적이나마 갯벌이 남아있다. ‘수라갯벌’이라 불리는 이곳은 만경강 하구의 마지막 남은 원형 습지이고 저어새와 도요새처럼 얕은 수심에서만 살 수 있는 새들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서식지이며, 간척으로 멸종위기로 몰린 이 새들에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다. 바로 이곳이 새만금 국제공항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심성 공약으로 내뱉어 주먹구구식으로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업용지, 산업용지 등으로 계속해서 사업목표가 변질되었고, 지금도 선거철마다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되며 간척이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어업은 붕괴했고 새만금 내부 수질은 시궁창 수준으로 썩었으며, 천혜의 갯벌을 죽이고 생겨난 매립지는 고비사막처럼 미세먼지만 발생시키고 있다. 전국 14개 지방공항 중 김포ㆍ제주국제공항 등을 제외한 10개 공항은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다. 이용객도 없어 ‘불 꺼진 공항’이 되어 혈세만 낭비할 것이 뻔한 새만금 국제공항을 짓겠다고 멸종위기 새들의 마지막 번식지마저 파괴한다면, 세계는 한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 타당성 없는 공항 계획을 철회하고 수라갯벌을 저어새, 도요새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면, 새만금은 세계인이 찾아오는 생태관광지가 될 것이다.
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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