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한 노력ㆍ돈에 비해 단기 효과 적어
남북관계, 소득주도 성장, 4대강 보와 딴판
국민 건강은 뒷전… 더 분노하는 수밖에
끔찍한 한 주였다. 지금껏 마스크를 쓴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냐며 극구 외면해 왔지만,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상 최악, 최장이라는 통계가 아니라도 집밖을 나서면 희뿌옇게 대기를 뒤덮고 있는 것이 모두 1급 발암물질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지푸라기에라도 의존해야 했기에.
‘수도권 내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마스크 착용 등 건강에 유의바랍니다.’ 온 국민이 이렇게 미세먼지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오후 5시쯤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날린 이 문자 한 통뿐이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필자에게는 이 문자조차 발송되지 않았다). 사방에서 경보음이 울릴 때마다 지방 도로를 달리다 보면 종종 접하는 ‘낙석 주의’ 표지판이 떠올랐다. 그래서 돌이 굴러떨어질 수 있으니 이 길을 지나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할 일 했으니 혹시 돌이 떨어져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일까.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낙석 주의’류의 이런 경보음이 닷새 연속 울려댄 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서야 긴급 보고를 받고 “비상한 상황이니 비상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이낙연 총리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저기 성난 국민들의 ‘마스크 민심’을 보며 아차 싶었을 것이다.
수십 년 쌓이고 쌓여온 문제에 하루아침에 획기적인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난센스다. 그렇게 손쉬운 것인데도 지금까지 내놓지 않았다면 용서하기 힘든 책임 방기일 테니까. 이튿날 문 대통령이 내각에 내린 주문은 고작 “중국 정부와 협의해 긴급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중국과 최선을 다해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누누이 밝혀 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노력을 게을리해 왔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당장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간 근거가 있느냐”며 코웃음을 쳤다.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간 각 부처들이 쏟아낸 수많은 정책 중에 건질 만한 것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여당의 행태도 똑같았다. 갑자기 예고 없는 재앙이라도 터진 것처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검토하겠다느니, 국가 재난 지정 등 미세먼지 관련 법안을 서둘러 처리하겠다느니 호들갑이다. 좋은 호재를 만난 듯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나라냐”며 정부ㆍ여당을 향해 폭격을 날리고 있는 자유한국당도 염치없긴 마찬가지다. 지금 이 꼴이 나도록 집권당 시절에는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민들이라고 미세먼지 해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건 국민 모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하루하루 삶의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책 순위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최우선이 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어렵기로 따지자면 그 이상일 수 있는 북핵 문제에서는 매번 좌절하면서도 참고 또 참으며 온 열정을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성과는커녕 부작용이 속출하는 데도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는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려 오지 않았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치자면 미세먼지보다는 훨씬 덜 시급할 수 있는 4대강 보 철거는 주민들의 의견 수렴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속도를 내고 있지 않은가.
미세먼지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미세먼지는 돈과 노력을 쏟아부은 만큼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찔끔 효과를 낸다 한들 국민들이 체감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큰 치적으로 남을 수 있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정부 이념과 철학을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소득주도 성장, 어떻게든 임기 내에 과거 정부의 색깔을 확실히 지우고 싶은 4대강 보 철거 문제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미세먼지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국민 건강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들의 분노 수위에 있음을 이번 ‘뒷북 소동’에서 여실히 봤다. 봄철 극심한 미세먼지 공습이 지나가면, 그래서 국민들의 분노 또한 살짝 수그러들면, 또다시 정책 우선순위 저 밑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은 건 그래서다. 더 분노하는 것만이 답일지 모르겠다.
이영태 뉴스3부문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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