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낙관적 접근에 ‘트럼프캐릭터’ 깜빡
트럼프, 이익 없으면 협상판 깰 만한 인물
美정치 상황, 트럼프 강온 전략 냉철히 봐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돌아왔다. ‘선 핵 폐기, 후 제재 해제’라는 리비아식 해법의 북한 적용을 주장해온 강경파.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조차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전후부터 북핵 이슈에서 물러나 있도록 했던 인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확대 정상회담에 그를 배석시켰고, 결국 그의 입장에 섰다. 이후 볼턴 보좌관은 연일 ‘빅딜 성사 전 노딜’ ‘압박ㆍ제재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나 교감 없인 불가능한 행보다. 반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협상팀 평양 파견 용의 발언 등 유화적 자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강온 양면 전략의 재현이다.

남북은 싱가포르 선언 후 트럼프 대통령 협상 전략의 한 면만 보고 협상 결과에 낙관론적 입장을 취했다. 그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외교 성과를 원하고, 따라서 하노이에서 진전된 비핵화 합의안에 서명할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대응했다. 하지만 민주당 하원 장악, 경제지표 악화, 국경 장벽 논란, 코언 청문회 등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빅딜 아니면 노딜’, 회담 결렬이었다. 통상의 정상회담 관례를 무시한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주도권을 쥐게 됐다. 북한은 5개 유엔 제재 해제를 요구해 대북 제재 효과, 즉 북한의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토로하고 말았다. 미국을 향해 다시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할 수도 있지만 경제 발전을 앞세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비핵화의 허들을 높인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에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비핵화 조치를 내놔야 하는 입장이 됐다. ‘긍정’과 ‘찬사’로 점철된 트럼프 대통령의 언변과 실무협상 내용을 과대 해석, 그가 수용 가능한 비핵화 수준을 낮춰 잡음으로써 더 큰 것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 우를 범한 것이다.

우리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정부 관계자들은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 ‘스몰딜은 입구, 빅딜은 출구’라는 등 한결같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 종전선언 맞교환 가능성을 예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3일 전 회담 성공을 전제로 ‘신한반도체제 구상’을 공개했고, 회담 하루 전에는 남북 경협을 염두에 두고 통상교섭본부장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했다. 청와대는 회담 결렬 30분 전까지도 문 대통령의 합의문 서명식 TV 시청 예정을 알렸다.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청와대, 정부 주변에서 회담 결렬 이후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 결정은 공화ㆍ민주 양당의 지지를 얻으며 백악관의 대북 강경 기조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NSC 회의에서 “남북 협력 사업의 속도감 있는 준비”를 지시했고, 통일부 장관은 미국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 협의 방침을 보고했다. 누가 봐도 미국 내 기류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낄 만한 대목이다. 북미ㆍ남북 관계가 함께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지금이 남북 관계 개선 카드를 꺼낼 때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이 북미 협상의 촉매제가 되게 하기 위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을 거론한 것이라 해도 너무 조급하고 안이하게 비치는 것은 분명하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야말로 ‘수틀리면’ 정상회담도 깰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리더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 줬다. 초유의 톱다운 방식으로 북미 협상을 이끌어온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반대로 협상 결과가 미국의 이익,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회담 판 자체를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여 줬다. 남북 모두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과 변수들까지도 면밀히 고려하면서 희망과 기대가 아닌 냉정한 현실 평가에 근거한 북미 협상과 남북 관계 개선을 진행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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