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이민 갈까” 글 줄이어… “임신 계획 미뤄” 출산율에도 영향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하니 둘째 낳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뒤늦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싶습니다.”
고농도 미세먼지의 한반도 공습이 일주일째에 접어든 7일 한 포털사이트의 임신ㆍ육아 관련 카페, 일명 ‘맘카페’에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한탄이 줄을 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자녀 계획과 관련된 글들이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임신 계획을 미뤘다”거나 “이런 환경에서 둘째를 낳아 키우는 건 욕심인 것 같다” 등 그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미세먼지를 피해 아예 공기가 깨끗한 해외에 장기 체류하거나, 이민을 떠나는 극단적 방안도 대처법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실제 몇몇 맘 카페들은 ‘미세먼지 대응’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설정해뒀다. 그 안에서 주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 있기 좋은 ‘괌 한달 살기’ 견적을 내보기도 했다.
이는 미세먼지가 며칠 정도 참고 넘기면 되는 당장의 불편함을 넘어 자녀의 미래 안위와도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미세먼지가 직접적으로 끼치는 해악 못지 않게,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활동이 금지된 아이들이 집이나 학교 안에 갇혀 지내는 일상이 이어지면서 운동량 부족, 면역력 약화 등 악영향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더 커졌다. 여기에다 별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 보인다는 점도 불안을 더 크게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내놓은 ‘2018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환경 문제가 불안하다고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이 꼽은 불안 요인은 미세먼지(82.5%)로 방사능(54.9%)이나 유해화학물질(53.5%)를 크게 앞질렀다.
네 살 딸을 키우는 곽모(32)씨는 “중국의 공장들을 멈추게 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는 게 아니라면 향후에도 대기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이민이 가장 빠른 탈출구 같다”고 말했다. 곽씨는 “한국에서 비교적 가깝지만 미세먼지가 덜한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같은 곳을 실제 이민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자세히 알아보고 있는 젊은 부모들이 주변에 많다”고 귀띔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미세먼지’와 ‘저출산’를 키워드로 한 청원이 200여건 이상 올라와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미세먼지로 인한 불안과 걱정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어 인구 감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고 밝힌 한 시민도 같은 날 청원을 통해 “저출산 국가에서 그나마 태어난 아이들도 미세먼지 때문에 생존을 위협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대기질 악화와 같은 환경적 요인은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출산율 하락, 인구 감소 등으로 이어질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