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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죽어가는 동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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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죽어가는 동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건 남자

입력
2019.03.08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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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라크 모술의 동부지역 한 동물원에서 굶주린 곰이 철창 안에 방치되어 있다. 모술은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IS)가 점령했던 곳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이라크 모술의 동부지역 한 동물원에서 굶주린 곰이 철창 안에 방치되어 있다. 모술은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IS)가 점령했던 곳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로렌스 앤서니 등 지음ㆍ고상숙 옮김

뜨인돌출판 발행ㆍ352쪽ㆍ1만5,000원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개전 이유가 무엇이든 전장은 아수라장이기 마련. 개전 초기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바깥쪽으로는 전화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바그다드 안쪽으로 향하는 건 미군밖에 없었다. 군인이 아닌 이상 애써 전장이 된 바그다드로 향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미군과 함께 바그다드로 향하는 민간인이 있었다. 이름은 로렌스 앤서니. 국적은 엉뚱하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그의 바그다드행은 미군의 작전을 돕기 위해서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민간인을 구조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앤서니는 동물애호가였다. 전쟁의 수렁에 빠져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 바그다드 동물원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바그다드로 전진했다. 그렇게 그는 개전 후 최초로 이라크로 들어간 민간인이 됐다.

이라크로부터 6,400㎞ 떨어진 곳에서 살던 앤서니가 바그다드에 입성하기까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인맥을 동원하고 미국 중부사령부의 허가를 받았다. 바그다드로 가는 길은 목숨 건 여정이었다. 파란 눈의 백인은 군복을 입지 않았어도 이라크인에게 적으로 오인될 만했고, 약탈이 일상화된 전장에서 뭇 사람들의 표적이 될 만했다.

어렵사리 찾은 바그다드 동물원은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맹수들의 우리 일부는 부서져 있었고, 원숭이 등 일부 동물과 조류는 밖으로 흩어졌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동물들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동물 사체들이 곳곳에 있는 데다 배설물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다. 동물원 직원을 규합하고, 실행 가능한 일들을 하나하나 착수하면서 앤서니는 동물원을 조금씩 정상화시켜 나간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약탈과의 전투는 특히 버거운 일이었다. ‘알리바바’(약탈꾼에 대한 이라크식 표현)는 새끼 원숭이와 공작새 등을 먹거리로 봤다. 약탈꾼과 싸우면서 일하는 일상 속에서 앤서니는 기지를 발휘했다. 냉장고 두 대를 갖춘 이후 동물원에 얼린 생수가 많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뜨거운 물병을 넘기고 차가워진 물병을 받으려는 미군이 쇄도하면서 약탈꾼들이 동물원을 넘볼 수 없게 됐다.

앤서니의 구조 활동은 동물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담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 후세인의 집 사설 동물원에 방치된 동물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긴급 구조에 나섰다. 앤서니 일행은 굶주린 사자 네 마리를 그곳에서 발견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문과 성폭력 등으로 악명 높았던 우다이가 기르던 사자들이었다. 앤서니 일행은 사자를 힘으로 몰아내는 방식으로 차 우리에 태워 자신들의 동물원으로 옮겼다.

제 아무리 열혈 동물애호가라도 동물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앤서니가 전쟁터로 향한 계기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TV로 보았던, 카불 동물원의 사자 마르잔이었다. 목과 턱에 산탄 파편이 박혀 있고,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던 마르잔의 끔찍한 모습이 이라크에서도 반복되는 걸 앤서니는 원치 않았다.

책은 앤서니가 이라크에서 겪었고 해냈던 일들을 상세한 묘사와 꼼꼼한 서술로 펼쳐낸다. 앤서니의 동물 구조기는 진군과 승전, 패퇴, 민간인 학살 등으로 수식되기 일쑤인 전쟁의 이면을 의도치 않게 면밀히 드러낸다.

“우리는 환경과 동물이 혹사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언젠가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다른 생물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합니다.”(74쪽)

앤서니가 이라크인 동료들과 동물원 정상화에 나서면서 한 말이다. 어느 상황, 어느 곳에서든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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