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미국의 중간선거는 최근 몇 년간 세계 민주주의 사회에서 급속히 퍼지는 포퓰리즘의 물결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포퓰리즘은 다양한 정당과 정치적 움직임에 사용되는 모호한 용어지만, 권력 엘리트에 대한 분노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2016년 대선에서 미국의 주요 정당들은 세계화와 무역협정에 포퓰리즘적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트럼프의 당선 이유를 지난 70년 동안 자유민주적 국제질서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응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너무 단순하다. 그 결과에는 많은 요인들이 관련돼 있고, 외교정책은 주가 아니다.

포퓰리즘은 새롭지 않다. 애플파이만큼 미국적이다. 1830년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 시절, 또는 20세기 초 미국이 진보적이던 시대에 일부 포퓰리즘 주창자들은 개혁을 강화하는 민주주의를 이끌었다. 1850년대 반이민자 반가톨릭 모르쇠당이나 1950, 60년대 조 매카시 상원의원과 조지 월러스 주지사 등은 외국인 혐오와 배제를 강조했다. 최근 미국 사회 내 포퓰리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포퓰리즘은 경제ㆍ문화적 뿌리가 있으며, 사회과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버드대학의 피파 노리스와 미시건대학의 로널드 잉글하트는 2016년 훨씬 전에도 선거에서 문화적 요인이 매우 중요했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유권자들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종, 성별, 성적 취향과 관련된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온 문화전쟁에서 권위를 잃은 백인 기성세대 남성들도 그랬다. 에모리대학의 앨런 아브라모위츠는 공화당 예비선거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인종적 적개심이 트럼프 지지의 가장 강력한 단일 예측인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제적 사정과 문화적 사정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들이 미국 시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두 문제를 연관지었다. 남부 국경 장벽은 유권자를 결속하는데 유용하므로 그는 이런 발상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 세계화나 자유민주적 국제질서가 존재하지 않았고 2008년 이후 대침체가 없었다 하더라도, 문화ㆍ인구통계학적 변화로 미국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포퓰리즘이 생겨날 수도 있다. 1920, 30년대에 이미 이런 현상이 있었다. 19세기 초 20년 동안 1,500만 이민자가 미국에 왔을 때, 많은 미국인들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1920년대 초 KKK가 부활해 “북유럽 인종의 몰락을 막고”, “그들이 숭상하는 더 유서 깊고 동족적인 미국을 보존”할 목적으로 1924년 국적별 이민제한법을 촉구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당선도 1960, 70년대 시민평등권 운동과 여성해방 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커진 인종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분열을 반영한 것이었다. 무역처럼 로봇에 일자리를 뺏기는 상황이므로 미국에서 포퓰리즘은 지속될 것이며, 문화적 변화로 이런 분열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 개방을 지지하는 정책 엘리트는 경제 불평등과 국내외 변화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그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경제가 개선되면 이민에 대한 태도는 나아지겠지만 감정적 문화적 문제는 남아있다. 경기침체가 절정이던 2010년 중반 퓨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39%가 이민자들이 나라를 강하게 한다고, 50%는 짐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51%가 나라를 강하게 한다고, 41%가 짐이라고 응답했다. 미국의 비교우위를 가능하게 한 이민 문제에 대해 정치지도자들은 물리적 문화적 경계에 대한 관리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미국 여론을 예측하면서 선거 당시 열변이나 미사여구, 트럼프의 탁월한 소셜미디어 사용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트럼프는 선거인단의 표를 얻었지만 일반 투표에서는 목표보다 300만 표 부족했다. 2016년 9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5%는 일자리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미국에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고립주의’는 현재 미국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1974년 이후 매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미국이 세계 정세에 적극 참여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조사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약 3분의 1은 지속적으로 19세기 전통을 고수하는 고립주의를 표방했다. 이 수치는 2014년 41%까지 이르렀다. 흔히 알 듯 2016년은 1945년 이후 고립주의가 절정에 이른 시기가 아니다. 선거 당시 64%가 세계 정세에 적극 개입을 선호한다고 했으며, 이 수치는 2018년 여론조사에서 70%까지 올라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민과 세계화에 대한 이 같은 미국 사회의 강한 지지는 ‘포퓰리즘’이 문제라는 주장과 들어맞지 않는다. 이 단어는 여전히 모호하며, 특히 지금처럼 이 단어를 붙인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가 시들어가는 이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답도 별로 없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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