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일 만에 석방… 구속만기 前 보석해야 주거ㆍ접견 제한, 보증금 10억도 조건
110억원대 뇌물 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349일만에 재판부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주거가 엄격히 제한되긴 하지만 향후 불구속 상태에서 남은 재판을 받게 됐다.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계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석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6일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조건부로 인용했다. 재판부가 보석을 허가한 것은 구속 만기까지 한 달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재판부 교체 후)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서 “심리하지 못한 증인 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구속만기로 석방할 경우 주거 또는 접견을 제한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인멸의 염려가 더 높다는 점까지 감안해, 사실상 구속의 효력에 버금가는 조건부 석방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재판부는 자택구금 수준의 엄격한 보석 조건을 내걸었다. 이 전 대통령은 주거 및 외출 제한, 접견 및 통신 대상 제한, 10억원의 보증금 납입, 주 1회 보고 등의 보석 조건을 지켜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즉시 재구금된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이 건강 문제를 이유로 청구한 ‘병보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는 보석 결정과 함께 “형사재판은 현재의 피고인이 과거의 피고인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택에 가서 기소 사실을 보면서 과거의 일을 찬찬히 회고해 달라”는 특별한 당부를 남겼다. 재판장은 “보석은 무죄 석방이 아니라 엄격한 보석 요건을 지킬 것을 전제로 한 구치소에서의 석방일 뿐”이라고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보석 결정 직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와 오후 4시 10분쯤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과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측근과 지지자 30여명이 구치소 앞에서 이 전 대통령의 석방을 맞이했으며 자택 앞에는 환영 인파가 보이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두고 일각에선 ‘황제보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법조계에선 대체로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라는 평가다. 구속만기로 풀려나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는 반면, 구속만기 전 조건부 보석의 경우 선고가 늦어진다 해도 석방 당시 조건은 계속 지키는 안전장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재판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라도 보석이 취소되지 않도록 조건을 잘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보석 이슈가 나올 때마다 ‘복불복’ ‘황제보석’ 등의 논란이 불거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보석에 대한 법관의 재량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보석사유가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판사의 재량에 따른 판단이 대부분”이라며 “재량의 범위가 넓다 보니 허점을 노린 변호사가 보석을 빌미로 수십억원을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구속 상태에서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석 가능성도 주목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허리 디스크 통증을 앓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건강상 이유로 보석을 청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확정 받은 상태라 보석 결정이 나더라도 곧바로 형 집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보석 청구는 실익이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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