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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고 골치 아파” 대학병원 정신병동 잇단 축소ㆍ폐쇄

입력
2019.03.11 04:40
수정
2019.03.11 16:5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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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2>대학병원 찬밥 신세, 정신과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연말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교수가 진료 중 환자의 흉기에 살해당한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 이후,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정신과 의료진의 실태가 사회적인 조명을 받았다. 이후 정신과 진료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최근 대학병원에서 정신과는 바람 앞의 등불신세다. 실제로 정신과 병동 폐쇄 요구는 병원장, 의료원장 등 병원 수뇌부가 교체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최근 리모델링 중인 경남지역의 한 대학병원은 원장이 정신과과장에게“이참에 정신과 병동을 없애자”고 요구,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학병원의 정신과 병동 축소 현상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43개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폐쇄병동은 857개로 2011년 1,021개에 비하면 15% 가량 줄어들었다.‘빅5’로 불리는 서울지역 상급종합병원 5곳의 정신과병동 숫자를 취합한 결과, 병원당 폐쇄병동과 개방병동을 모두 합쳐 60병상을 넘기는 병원은 없었다. 서울 근교 한 대학병원의 정신과 교수A씨는“은퇴한 선배 중 한 명은 과거에 병원장이 병동을 폐쇄하겠다고 하자 주먹다짐까지 해가며 이를 막아냈지만, 결국 병원은21개 병상을 15개로줄인 적이 있다”면서 “이제는 그런 얘기도 무용담처럼 남았을 뿐 그저 막막할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형외과, 정형외과, 피부과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신과는 의대생들이 선호하는 진료과 중 하나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효과가 많이 사라졌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 175만6,000명이었던 정신과 치료환자는 2017년 280만3,866명으로 증가했다.

대학병원에서 정신과가 찬밥신세가 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정신과는 다른 진료과에 비해 수익성은 떨어지고 운영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게 정신과 의사들의 설명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각종 검사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신체질환과 달리, 대부분 상담을 통해 진료가 이뤄지는 정신과는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준호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교수는 “CT나 MRI 등의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정신과는 다른 진료과 매출의 30~40%수준이라 병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푸념했다. MRI는 비급여일 경우 뇌 부위는 100만원대, 척추관절은 70만~80만원대다. 반면 정신과의 경우,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분 이하 상담은 1만3,910원, 20~30분은 4만5,422원, 40분 이상이라고 해야 8만5,592원(서울 B대학병원 건강보험 수가)이다. 환자 1명을 오래 진료하는 것보다 여러 명을 짧게 진료하는‘박리다매’가 병원의 수익 모델인 상황에서, 정신과의 상담수가는 검사를 통한 수입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 정신과병동을 운영하려면 외부차단시설, 운동시설, 병실안전장치 등을 설치해야 하는 등 운용비용이 많이 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병원의 정신과 교수들은 스스로를“병원과 환자에게 치인 샌드백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정신과교수 C씨는 “최근 외래에서 자살위험이 있는 환자를 입원시키기 위해 1시간 넘게 실랑이를 벌였는데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며 외래에서 소란을 피운 것이 병원장에게 보고돼 야단을 맞았다”고 전했다. 그는 “초진환자 중 상태가 심각해 환자의 상담시간이 길어지면 대기 환자들이 오래 기다린다며 난리를 치고, 병원에서는 돈도 되지 않는 환자를 왜 그렇게 오래 보느냐고 질책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대학병원들이 정신과 병동을 축소하거나 폐쇄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환자들은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을 협진할 수 있는 종합‧상급병원 정신과 병동입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법망의 허점을 메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의료법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으로 등록된 정신병원과 정신과의원에서는 정신과병동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지만, 종합ㆍ상급병원들은 이를 운영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또한 100~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은 정신과가 필수진료 과목이 아니라 정신과 외래를 개설하지 않아도 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들은 의무적으로 정신과 병동을 운영토록 하는 식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수익성이 없다는 명분으로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병동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초발환자, 급성기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환자나 가족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정신과 병동을 축소, 폐쇄를 해도 법 위반사항이 아니라 현황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대학병원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해야 할 공적 책임이 있는 만큼 앞으로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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