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우리은행 간판 박혜진과 탕정중 1년 정지우 
 #어린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와 박세리, 김연아 등을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는 [꿈을 만나다] 시리즈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아산 우리은행의 박혜진(왼쪽)과 우리은행 위비 주니어의 정지우가 지난달 28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지난달 28일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의 홈 구장인 충남 아산의 이순신체육관. 선수들이 훈련 중이던 경기장에 숨죽이며 발을 들인 여중생은 부끄러웠는지 엄마 뒤로 몸을 숨겼다. 정지우(13ㆍ아산 탕정중 1년)는 우리은행의 원정경기까지 빼놓지 않고 ‘직관(직접 관람)’을 다니는 열성 소녀팬이자 농구 꿈나무다.

우상으로 꼽은 박혜진(29ㆍ178㎝)을 마주한 정양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휴대폰을 꺼내더니 빼곡히 적어 온 뭔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 동안 먼 발치에서만 바라봤던 박혜진에게 직접 묻고 싶었던 ‘폭풍 질문’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은행 위비 주니어에서 가드를 맡고 있는 정양이 “가드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라고 묻자 한국 여자농구 최고의 가드 박혜진은 “공을 가지고 있고 운반하는 포지션이니까 아무래도 드리블이 가장 중요하다”고 눈높이 레슨을 해줬다.

정양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해 주고 있는 박혜진. 류효진 기자

피겨스케이팅을 하던 정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 곳에 처음 관전을 와서 농구와 인연을 맺은 뒤 주니어팀 모집 공고를 보고 곧장 가입했다. 아직은 취미로 하고 있지만 주말에만 운영하는 클럽에 평일에도 가고 싶어할 정도로 농구에 푹 빠져 있다는 게 어머니 서정애씨의 귀띔이다. 이를 들은 박혜진은 정양에게 “우리 때는 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농구만 하면 됐는데 요즘은 다르다. 즐거운 마음으로 농구를 하되 지우는 공부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징크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박혜진은 “개인적으로 루틴이 많은 편이다. 경기 전엔 커피를 마셔야 되고, 되도록 말을 많이 안 하고…”라며 말을 줄이려 하자 정양은 이어서 “공 놓고 화장실 가고 국민의례하고…”라며 이미 꿰뚫고 있는 박혜진의 루틴을 대신 나열했다.

한 동안 농구 외적인 대화를 이어가다가 정양이 “언니, 내년에 팀 이적하실 건가요?”라고 묻자 박혜진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웃음을 짓더니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양은 “계속 없어야 해요. 언젠가 임근배(용인 삼성생명) 감독님과 한번쯤 함께 해 보고 싶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서 삼성생명 가는 거 아닌가 걱정했어요”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박혜진이 “언니 다른 데 가면 팬 안 할 거야?”라고 ‘역공’을 하자 정양은 “우리은행 탈퇴하고 거기 갈게요”라고 화답했다. 이번 시즌 우리은행과 1년 계약한 박혜진은 FA 자격을 유지한다.

박혜진과 정양. 류효진 기자

정양이 진지하게 또 물었다. “은퇴는 언제쯤 하실 건가요?” 박혜진은 또 웃더니 기자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번에 (임)영희 언니 은퇴 고민하는 거 보곤 방에 누워서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봤어. 개인적인 목표는 서른 다섯 살까지야.” 박혜진은 이견 없는 2010년대 여자농구 최고의 선수다. 프로 5년 차인 2012~13시즌 처음 우승한 뒤 지난 시즌까지 통합 6연패 위업을 이루며 반지 6개와 최우수선수(MVP) 트로피(정규리그 4회ㆍ챔피언 결정전 3회)를 쓸어 담았다. 워낙 어려서부터 정상에 올라서 그렇지 한국 나이로 아직 서른 살에 불과하다. 박혜진도 “어릴 때부터 많은 상을 받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부담감, 압박감이 있었다. 발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은퇴)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묻는 정양의 얼굴에 벌써부터 아쉬움이 묻어났다. 박혜진은 “땀이랑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지우도 뭐든 즐겁게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을 찾을 것”이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아산=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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