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드러난 ‘사법부 치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옛 국민의당이 박선숙ㆍ김수민 의원 재판과 관련해 양승태 사법부에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재판 배당 시스템까지 조작하는 양승태 사법부의 대담성도 확인됐다.
국민의당 재판 청탁 사실은 사법농단 수사팀이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존폐 기로에 서 있던 국민의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평소 의원들과 친분이 깊던 이민걸 당시 실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미 기소된 같은 당 박선숙ㆍ김수민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유무죄 심증과 구속된 왕모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보석허가가 가능한지를 알아봐달라는 취지였다. 이 실장은 국민의당 측 요청이 헌법으로 보장된 재판 독립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을 넘어 사실상 압력을 행사해달라는 부탁임을 알면서도 서부지법 기획법관에 즉시 지시를 내렸다. “재판부 심증과 보석허가 여부를 지체 없이 보고하라”는 이 실장 요구에 기획법관은 같은 해 10월과 11월 “재판부가 선고 이전에 보석을 허가할 생각이 없다”, “주심판사가 ‘피고인 측 변명이 완전히 터무니 없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해당 내용은 이 실장을 통해 국민의당 의원 측에 전달됐고, 불법적으로 파악된 재판부 의중은 피고인들의 변론 전략에 핵심적인 도움을 줬다. 실제로 1ㆍ2심은 두 의원과 사건 관련자 5명 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겨두고 있다.
재판배당 시스템 조작은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의 기소 내용에 포함됐다. 사건은 서울행정법원이 2015년 11월 박근혜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을 각하하면서 불거졌다. 법원의 힘이라도 빌어 통진당을 무력화시키고 싶었던 박 정권의 심기가 불편해지자, 법원행정처는 즉시 심 전 원장에게 연락을 취해 “서울고법 행정6부로 무조건 항소심 사건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화가 가능한 우호적 판사’로 분류한 행정6부의 김광태 부장판사가 사건의 주심을 맡으면 1심의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인 높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심 원장은 이에 행정법원으로부터 정식으로 기록이 송부도 되기 전에 미리 사건번호를 만들어 놓는 방식으로 해당 사건이 행정6부로 자동 배당되도록 절차를 조작했다. 법원 전산 지원 계통 관계자는 5일 “적어도 외관상 전자배당이 진행됐기 때문에 당시 법원 내부에서도 배당 조작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배당은 공정 재판을 위한 가장 기본절차로, 임의로 사건이 배당된다면 재판 독립은 존재할 수 없다”며 “정상적인 배당 절차가 진행됐다면 행정6부로 사건이 배당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해 심 전 원장을 우선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배당 조작을 지시한 행정처 간부와 이 실장에게 청탁을 한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확인한 뒤 형사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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