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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한독립’을 위협하는 숫자들

입력
2019.03.0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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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가 줄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장차 온전히 홀로 선 대한민국에 살 수 있을까.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민족대표 33인 및 3·1 독립운동 희생선열 추념식에서 역사어린이합창단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갈수록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가 줄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장차 온전히 홀로 선 대한민국에 살 수 있을까.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민족대표 33인 및 3·1 독립운동 희생선열 추념식에서 역사어린이합창단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0.98

1+1=2라는 평범한 산수를 비웃는 숫자를 이렇게 빨리 접할 줄 몰랐다.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의 평생 기대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인구 현상유지에 필요하다는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98명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에서 유일한, 전쟁 등 특수상황을 빼곤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0명대 출산국’이 되고 말았다. 100년 전 일제로부터 홀로서기[獨立]를 염원하며 외쳤던 ‘대한 독립’을 이제는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 처지다.

우리 경제는 지난 반세기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불타올랐다. 그간의 주된 연료였던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이 이제는 사명을 다했다 해도, 불씨를 유지할 최소한의 인구가 없다면 그 불꽃이 사그라지는 속도 역시 누구보다 빠를 것이다.

다른 사회ㆍ경제 지표와 달리 좀체 바뀌지 않는다는 인구 그래프가 굳어진 지금, 한국인은 스스로를 향해 독립만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0.92

지난해 국민연금은 설립 30년 만에 최악의 투자 수익률(-0.92%)을 기록했다. 세계 경제가 난리였던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0.18%) 이후 10년 만의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한 해쯤 마이너스가 나면 어떠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감한 연금 고갈 시점을 계산하며 국민연금이 기본 전제로 깐 장기 투자수익률 평균은 4.5%다. 마이너스가 한 해 끼어들면 산술적으로 다음해 9% 이상은 내야 4.5%를 겨우 맞춘다. 한 해 마이너스 수익률이라고 절대로 그냥 흘려 들을 숫자가 아니다.

국민연금은 한국인 대다수가 ‘노후의 경제적 독립’을 맡긴 버팀목이다. 시장이 안 좋았다고, 다른 나라 연기금보단 덜 잃었다고 핑계 댈 곳이 없다.

88.6

인구가 줄어도 문제 없다는 목소리가 간혹 들린다. 오히려 북적거리지 않게 잘 살면 되지 않냐는 말은 너무 낭만적이다. 적정 수준의 인구, 특히 일할 나이의 인구가 줄어들면 사회의 생산성, 역동성은 크게 후퇴한다는 게 대개의 연구결과다.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년인구 수(노년부양비)는 2015년 17.5명에서 2065년 88.6명으로 5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그나마 합계출산율이 2015년 1.24명, 2050년 1.38명 수준은 유지한다는 ‘중위 추계’를 토대로 한 것이다.

지금은 2020년 1.10명을 점친 비관적 시나리오(저위 추계)에도 못 미치는 0명대 출산율로 접어들었다. 저위 추계를 기준으로 한 2065년 노년부양비 전망치는 99.7명이다. 이대로 가다간 50년 뒤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 이상씩을 머리에 이고 사는 그림이 뻔하다. 작년엔 젊은이 5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했는데 말이다.

미래 세대에게도 경제적 독립은 소중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입시난, 취업난에 이어 부양난까지 물려줄 판이다.

2057

국민연금은 언젠가 현재의 적립식(내가 낸 돈을 굴려 나중에 돌려받는 방식)에서 부과식(후세대에게 걷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대개의 선진국이 그랬듯, 우리도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정부가 추산한 현 시점에서의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2057년이다. 그 즈음을 전후해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노인인구만 급격히 늘어난다.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너무 빨리 늘어난다면 연착륙을 기대하기 어렵다. 세대간 상생이 아니라, 갈등과 대결이 뻔하다.

지금의 20대가 60대가 되는 2057년은 아직은 먼 미래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추세라면 지금의 20대 청년이 50대, 아니 40대에 이런 변곡점을 맞을 수도 있다.

100년 전 이 땅의 한국인들은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독립을 바랐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독립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이 땅의 독립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용식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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