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성추행 현장 함께 있었던 윤씨 첫 공개 증언
10년 전 유력인사에게 성상납을 강요 받았다는 주장을 남긴 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배우 장자연씨의 옛 동료가 공개 증언에 나섰다. 장씨가 남겼던 문건 ‘장자연 리스트’가 유서가 아니라 법적 대응을 비롯한 분쟁을 대비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새롭게 제기했다. 해당 주장을 제기한 이는 장씨의 옛 동료 배우인 윤지오씨로, 그는 장씨가 성추행을 당하는 현장에 있었다고 밝힌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윤씨는 그 동안 일부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긴 했지만 실명과 본인의 얼굴을 직접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장자연 리스트 조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윤씨의 주장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관심이다.
윤씨는 이날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장자연) 언니가 기획사를 나오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지 않을까 (싶다)”라며 “솔직히 말하면 세상에 공개를 하고자 쓴 문건이 아니라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쓰여진 문건”이라고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장자연 리스트란 장씨가 2009년 3월 언론사 고위 간부를 비롯한 유력인사들로부터 성상납을 강요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4페이지 가량의 자필 문건을 말한다. 윤씨는 장씨 사망 후 소속 기획사 대표를 통해 직접 문건을 본 적이 있지만, 해당 문건은 유족들이 소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언론과 수사 당국은 성상납 압박을 견디다 못한 장씨가 일종의 유서 격으로 해당 문건을 남겼다고 봤지만, 윤씨는 장씨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성한 ‘대비책’으로 해석했다.
윤씨는 장씨가 전직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힌 이로, 관련 사건에서 법정 증언에 나서는 등 장씨의 피해 상황에 대해 사실상 유일하게 적극적인 진술을 해 왔던 인물이다. 장씨 사건 당시 언론의 과도한 취재와 수사에 부당한 외압이 작용하고 있다고 느껴왔다는 주장도 폈다.
윤씨는 사건 초기 수사기관의 부당한 행태 폭로도 이어갔다. 그는 당시 조사가 일러도 오후 10시 무렵에 시작돼 5~8시간 가량 진행 된 후 새벽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수사기관의 조사 시작 시간은 조사 대상자의 사정상 밤 늦은 때에 진행되는 경우는 있지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심야에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윤씨는 사건의 피의자가 아닌 목격자로서 참고인 신분에 불과했고, 폭로에 따른 사실상의 ‘2차 피해자’에 해당됐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윤씨는 “갓 스무살 나이에 그런 (수사기관) 공간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생소해서 저는 그 시간대에 원래 진행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장씨 성추행 가해자와 좁은 공간에서 함께 대면 조사를 받았으며 가해자로부터 비웃음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현재 장씨 사건은 검찰의 잘못된 수사를 바로 잡겠다며 발족한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당초 과거사위원회는 장씨 사건을 비롯한 15건의 사건에 대해 지난해 8월까지 조사를 마치기로 했지만 방대한 조사 과정을 감안해 두 차례 기한을 연기, 오는 3월 말에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등이 소환 조사를 받았으며 윤씨 역시 과거사위원회의 조사에 응한 바 있다.
윤씨는 장자연 리스트 문건 작성 배경에 대해 “어떻게 보면 가장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어떤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쓰여진 것처럼 상세히 (작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저는 위약금을 물고 기획사를 나온 상태였고, 언니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마 기획사를 나오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특히 “문건을 공개한 분이 ‘자연이가 쓴 게 있는데 너도 와서 쓰지 않겠냐’고 (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이미 밝혀진 내용이지만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물이 다수였으며 윤씨에게도 작성을 제안한 것으로 비춰볼 때 누군가가 성상납 문건을 마련해 특정 목적에 이용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윤씨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장씨가 스스로 비관적인 선택을 한 데는 성상납에 대한 고통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죽음 자체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장씨 사망 당시의 부자연스러운 정황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그는 “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도 유서가 단 한 장도 발견이 되지 않았다”며 “(장자연 리스트가) 만약 싸우기 위해서 작성된 문건이었다면 유서를 남기면서 ‘이런 문건이 있다’고 명시를 한다든지 할 텐데 그 문건을 다른 누군가가 갖고 있고, 공개를 다른 분이 했다”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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