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2차대전 당시 재위한 비오 12세 시절의 비밀 문서를 내년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오 12세에 대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다”는 비판이 수십년간 이어져 온 가운데, 교황청이 “막후에서 유대인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라면서 자료 공개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요구하고 나선 만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오 12세의 교황 즉위 81주년인 내년 3월 2일을 기해 그의 재위 기간 작성된 교황청 공식 외교 문서를 연구자들이 볼 수 있도록 봉인 해제할 계획이라고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고 BBC 등이 전했다. 이 자료들은 교황의 칙령, 회칙, 바티칸의 외교 서신 등을 모두 포함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교황청 비밀문서고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회는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하며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교황은 "내 전임자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이 기록 유산을 연구자들에게 공개한다"면서 "연구자들이 비오 12세의 기록과,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 이뤄진 그의 은밀하지만, 활발한 외교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은 일반적으로 특정 교황의 재위가 종료된 후 70년이 지난 후에야 해당 교황 시절에 작성된 문서를 모아놓은 기록 보관소의 빗장을 푼다. 하지만 수십년간 유대인 단체 등은 비오 12세 시절 작성된 문서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조속히 공개하라고 교황청을 압박해왔다. 비오 12세의 재위 마지막 해에서 70년이 지난 시점은 2028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례보다 약 10년 앞서 비오 12세 시절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비오 12세의 유산이 “일부 편견과 과장”에 의해 다뤄졌다면서, “누군가에게는 과묵함으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이 문서들은) 심각한 환난의 순간들, 인류의 고통스러운 결정 그리고 기독교의 신중함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대인 그룹을 주축으로 한 일각에서는 1939년부터 1958년까지 장장 20년 간 로마 가톨릭 수장을 지낸 비오 12세가 2차대전 기간 나치 독일의 범죄를 묵인해왔고, 유대인 학살을 막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비판해왔다. 재위 중이던 1942년 12월 나치의 학살을 공개 비판하는 연대 성명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아우슈비츠 강제 추방이 이루어질 때도 공개적으로 막아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오 12세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가 “피상적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수도원과 수녀원 등 교회 시설에 비밀리에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등 나치에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막후에서 은밀히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비오 12세는 “유대인의 위대한 수호자”라면서 “역사적 맥락에서 그(비오 12세)의 역할을 봐야 한다. 더 큰 유대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공개 발언을 하지 않는 게 나은가, 아니면 공개 발언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면서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이날 교황청의 발표로 유대인 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냈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결정을 칭찬하면서 “모든 문서에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30년간 비밀문서 공개를 요구해 온 미국유대인위원회(ACJ)는 “홀로코스트 시기에 이루어진 용맹한 노력과 실패, 둘 모두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역사적 기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면서 비밀문서 공개 결정을 반겼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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