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펴낸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주변국을 경계하라. 양면성을 잃지 마라.”
최근 만난 한국 외교사 연구자 구대열(74)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강대국 틈에 껴 있는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겉과 속이 다른 ‘이중 외교’를 적극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 교수는 올해 초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4권)를 총괄 편찬했다. 2015년 재단 산하에 ‘한국외교사 편찬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50여명의 연구진과 함께 3년 넘게 공동작업 한 결과다. 구 교수는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고대부터 고려 조선 근대까지 한국 외교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외교사는 역사학과 국제 정치학에 종속돼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변방의 학문으로 취급돼 왔다. 독립 전공도 없고, 학과목도 별도로 개설되지 않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였던 한국 외교의 처지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구 교수는 “한국 외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 외교는 늘 강대국에 휘둘리면서도 자주성을 지키려 애썼다. 조공(朝貢)은 큰 외교적 무기였다. 구 교수는 “조공 외교를 굴욕적이라고 말하는데, 약소국에겐 매우 유용한 외교술이었다”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한 고려는 숙적 관계인 송나라와 거란 양쪽에 나란히 조공을 바치는 ‘양다리 외교’로 국가 이익을 확보했다. 송나라 문호인 소동파가 “고려가 의(義)를 사모하여 내조(來朝)했다고 하지만 실은 이(利)를 바라고 왔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구 교수는 요즘 외교 현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선 가장 경계해야 할 한반도 주변국으로 중국을 꼽았다. 그는 “중국은 국수주의 기조가 강한 나라로, 역사 상 자신들에게 도움되지 않는 일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반대가 통일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옛 소련 못지않게 프랑스나 영국 등 인접국의 반대가 집요했다”면서 “겉으로는 통일을 환영한다면서 뒤로는 치열하게 막았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한이 합쳐지면 7,500만의 강대국이 되는데, 중국 입장에선 국경선과 맞닿은 또 다른 일본이 등장하는 것이라 결코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북미 협상이 답보 상태인 상황에서 미국이 손 떼면 우리가 모든 걸 다 해줄 것처럼 앞서 가선 안 된다”며 “상황과 타이밍을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개혁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시간은 우리 편인 만큼 급히 갈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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