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국제무대 데뷔 후 첫 실패 충격 커
주민들 삶 개선 위해 개혁ㆍ개방 필수적
이번 기회 놓치지 말고 결단력 발휘해야

합의 없이 끝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더 큰 패배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같은 ‘빈손’ 귀국이지만 별로 잃을 게 없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한 김 위원장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기약 없는 ‘고난의 길’을 다시 가야 하고 어렵게 안정시켜놓은 ‘지도자 리더십’도 흔들리게 됐다. 지난해 국제무대 데뷔 이후 처음 맛본 외교적 실패의 충격도 크다.

김 위원장의 가장 큰 실책은 미국 국내정치와 대북 핵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보였던 당당한 모습이 아니다. 8개월 사이 트럼프는 국내 정치에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핵심 참모였던 코언의 폭로가 아니라도 멕시코 장벽 사태, 대중 무역협상, 경제 둔화 등 악재가 수두룩하다. 의회와 극한 대립 중인 트럼프가 ‘스몰딜’로 성공을 포장하기에는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하자 상황을 낙관했을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성과에 목말라 하는 트럼프의 조급성을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핵협상 실무를 꿰고 있는 그로서는 큰 흐름만 소화하는 수준의 트럼프를 공략하기에 톱다운 방식만큼 효율적인 수단도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국내 여론 등을 고려해 ‘플랜B’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개최 한참 전부터 “서두르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던 그는 영변 외에 ‘+α’가 나오지 않자 주저 없이 결렬을 선언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이런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던 듯하다. 실무협상팀이 만들어 놓은 것 외에 추가적인 ‘거래목록’을 챙겨오지 않았다. 이런 조언을 해줄 노련한 대미협상가들은 주변에서 진작 사라졌고, 김 위원장의 외교협상 경험도 일천하다. 직관적 본능에 따라 협상을 뒤흔드는 노회한 ‘거래의 달인’을 30대의 무경험자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애초 핵을 거래 수단으로 삼을 때부터 협상은 기울어진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과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한 것은 북한 핵미사일이 본토 사정거리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결사항전’의 무기일 때 핵과 미사일은 위협적이지만 이를 내려놓으면 값어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핵무기로 위협하던 2년 전과 지금, 두 갬블러의 판돈과 처지는 천양지차다.

김 위원장의 또 다른 착각은 핵보유국 지위 승인이라는 환상이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미국이 이스라엘, 파키스탄처럼 핵을 인정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일지 모르나 오산이다. 친서방 정권이 지역적 권력균형에 필요할 경우 미국은 핵무장을 승인했지만 적대적 정권이 추구하는 핵무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비아, 이라크는 전쟁도 불사하며 저지했고, 이란은 타결된 협상을 뒤집으면서까지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 어떻게 하든지 결말을 내고 목표한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당장은 경제가 문제다. 북한 GDP의 70%가 장마당 등 민간 부문에서 발생할 만큼 풀뿌리 자본주의가 급성장했다. 국가가 더는 인민의 경제생활을 책임질 수 없게 된 마당에 개혁ㆍ개방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국가가 주민들의 삶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면 그들이 먼저 들고일어날지 모를 만큼 내부 상황이 달라졌다.

김 위원장의 소극적 협상 전략은 비핵화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체제 안전 우려 때문이다. 핵은 북한에는 국가 생존이 달린, 말 그대로 ‘보검’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트럼프가 있을 때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 여론을 물리치고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 것만큼 확실한 체제보장 약속은 없다.

김 위원장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명확한 목표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하노이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훗날 역사가 제대로 기록해줄 것이라 믿고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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