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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미 협상과 한반도 평화 구축의 주체

입력
2019.03.0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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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시간에 대한 시각차로 틀어졌다. 회담 기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는 1분도 귀중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할 때마다 등장한 반응이었다. 한반도 평화 구축을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협상 당사자들이 각자의 시간만을 중시한 것이다.

이 같은 시각차는 양국의 국내 사정이 배경일 수 있다. ‘1분도 귀중하다’는 북한 입장은 하루라도 빨리 경제 제재가 풀리기를 바라는 북한 경제의 어려운 사정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또 이번 회담의 성과에 따라 대미ㆍ대남 관계에 대한 김정은식 접근법이 맞이할지 모를 정치적 위기나 기회를 의미할지 모른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미국 입장은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까지 더 나은 협상을 위한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다는 표현일 것 같다. 오랫동안 미국 정부의 미해결 과제였던 북핵 문제가 트럼프의 외교적 업적으로 탈바꿈할 최적의 시점을 기다리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현대의 국제협상 과정에서 국내 사정이 중요한 변수가 된 지는 오래다. 그러나 과도한 국내 사정에 대한 강조는 협상의 큰 장애로 기능한다. 최근 브렉시트 협상이 그런 대표적 사례다. 영국은 2년 전 탈퇴 협상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탈퇴 방식을 찾는 데 골몰했다. 반면 유럽연합은 영국 같은 ‘미운 오리 새끼’가 더는 등장하지 않도록 내부 회원국 단속에 집중했다. 그 결과 공식 탈퇴 기한인 3월 29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브렉시트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연합에도 골칫거리가 됐다. 영국은 어찌 보면 내부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유럽연합과 함께 더 큰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질 각오를 내비치는 것 같다. 유럽연합은 재협상 불가 및 탈퇴 규정 준수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협상안 없는(no deal) 탈퇴’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회원국별로 영국과 협력 수준이 다르고, 그에 따른 회원국 간 갈등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자 내부 사정에만 집중한 결과 브렉시트 협상은 당사국 모두에 공동의 난제가 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북미 간 협상은 어떨까. 하노이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의 핵심 전략을 평가하기는 시기상조다. 다만, 상황을 조금 단순화해서 이해해 보자. 우선, 이번 회담의 목표가 상대의 패를 확인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데 있었을 수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과거의 긴 역사를 생각하면 최근 1, 2년 사이의 변화 가운데 어떤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 자체가 무모하지 않나 싶다. 반면, 그래도 이번에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일정 수준의 합의를 만들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목적이 있었을 수 있다. 만약 의도가 이랬다면, 회담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의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북한은 미국의 시간과 배짱에 낭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떠맡겠다는 중재 역할은 후자의 경우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회담의 결렬이 전적으로 각자의 국내 사정에 근거한 이해충돌의 결과였다면, 이번 회담은 북미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악순환에 빠뜨리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혹시나 이렇게 북핵 문제의 고착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보겠다는 의지다. 미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꼭 필요한 대응이며 국민적 지지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일자리 문제나 청년실업 등 현재 한국 국내 사정은 실패한 회담의 중재보다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갈구한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 사회마저 국내 사정에 집중한 셈법만을 따라갈 수는 없다. 북한과 미국이 실패한 곳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주체가 바로 우리인 것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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