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정보 요구...2차 가해 우려”
군복무 중 성추행을 당한 병사가 외부기관에 상담을 요청했지만 부대 측에서 “피해자 신상 등을 제공하지 않으면 협조가 불가하다”며 방문 상담을 막아 논란이다.
군인권센터는 4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육군 17사단 소속 병사로부터 영내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 요청 신고를 접수했고, 이에 따라 지난달 26일 피해자 면담을 위해 공식적으로 부대 방문 협조를 요청했지만 사단장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협조 공문을 확인한 17사단 법무참모는 “피해자 신상 등 세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한 방문 협조가 어렵다”고 못박으며 “위병소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면회 신청을 하거나 피해자 휴가에 맞춰 상담을 진행하라”고 전했다. 17사단장 역시 상세한 사건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피해자와 면회를 하라고 권했다. 피해자 면담은 “국방부와 함께 와야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게 군인권센터의 설명이다.
군인권센터는 인권침해 신고 사안 중 방문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부대에 협조를 요청한 뒤 직접 찾아가 상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왔다. 지난해에도 10곳 가량의 부대를 방문해 성추행 등 영내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경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면담을 진행하면서 신고자를 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신고자의 신원노출을 막아왔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 간사는 “피해자 접촉 수단이 제한돼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복수인 경우가 많은데다 군 내부 신고시스템은 대부분 익명성 보장이 되지 않아 부대 방문 협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7사단은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단 관계자는 “군 규정상 외부의 민간단체에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조사나 면담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 판단했고 군인권센터 측에도 이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전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군인권센터는 규정을 내세운 이런 기계적 대응이 결국 피해를 키우고 2차 가해를 유도한다고 반박했다. 방 간사는 “군인권센터에 접수된 상담 중 성폭력 관련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이 국방부 고충 처리시스템인 ‘국방헬프콜’의 70배 가까이 되는데, 이는 외부기관으로부터 보호받길 원한다는 의미”라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간사까지 지낸 17사단장의 인권 의식이 이 정도인 것은 일선 지휘관들이 얼마나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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