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본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취재팀이 송고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체한 듯 답답했다. 미국의 거래 계산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게 최 부상의 토로지만 더 납득하기 힘든 건 불합리한 그의 논리였다.
대표적인 게 핵ㆍ미사일 실험을 멈춘 지 1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를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결의를 초래한 원인이 사라졌는데, 게다가 영변 핵 생산 시설의 영구 폐기라는 망외의 소득까지 국제사회에 안겨줬는데, 대체 왜 국제사회를 이끄는 미국은 응당 해야 할 의무(제재 해제 주도)를 방기하고 있느냐는 게 그의 의문이자 항의다. 하지만 시험 중단 자체가 아니라 핵 무장 차단이 대북 제재의 목표라는 건 국제사회에서 상식에 가깝다.
제재 해제 요구 명분으로 내세운 ‘인민의 고통’ 역시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위선적인 핑계라는 게 국제사회의 의심이다. 가령 사치품 금수로 애를 먹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제재 해제 덕에 완공된다면 거기서 북한이 벌어들인 돈이 정권의 금고 대신 인민 경제에 들어갈 거라는 장담을 아직 국제사회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자타 공인 핵 보유 목적이 체제 생존이고 핵 포기 이후가 정말 불안하다면 자기 안전을 담보할 장치부터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순서 아닌가. 제재 해제부터 노리는 저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힘센 미국과의 협상이 쉬울 리 없다. 그래도 제재 면제를 통한 남북 경제협력이 가능해지는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욕심을 부렸다. 과욕으로 비핵화 선언의 진정성을 의심 받던 협상 초기로 회귀하는 상황을 북한은 자초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 선택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 최 부상이 김 위원장 신년사의 ‘새로운 길’을 다시 언급했다. 중국 도움을 받아 제재 국면을 버티는 자력갱생의 길일 수도 있고, 영국 주재 외교관으로 일하다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말대로 이란에 핵 기술을 내다팔아 생존을 도모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협상이 한 번 망가졌다고 행여 극단의 자충수를 둬서는 안 된다.
차라리 잘됐는지도 모른다. 이번 담판 결렬을 교훈 삼아 핵을 가진 채 제재를 풀어보려는 꼼수는 포기해야 한다. 핵과 경제를 함께 못 가지도록 만드는 게 제재의 힘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선대보다 실용적인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뭣이 중한지’ 알 것이다. 그러려면 포기도 해야 한다. 이왕 동결(핵 무기 생산 중단)을 결심했다면 과감히 이행해야 한다. 심장부(영변 핵 시설)를 주는데 나머지를 다 내놓는 걸 머뭇거릴 이유가 뭐가 있나. 승부는 결국 감축 협상에서 난다. 감축 의무 이행에 게으른 핵 보유국 미국도 당당할 게 없는 협상이다. 핵과 전쟁 없는 한반도는 좋은 명분이다. 북한이 진정성을 챙겨 돌아오기를 바란다.
권경성 정치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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