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극장가에 울려 퍼진 만세 함성이 감동적인 흥행 역주행을 연출했다. ‘3ㆍ1 운동의 아이콘’ 유관순 열사를 그린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항거’)가 연휴 극장가를 달구며 3일까지 누적관객수 80만명(영화진흥위원회)을 기록했다. 순제작비 10억원으로 만들어진 이 저예산영화는 지난달 27일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해 ‘증인’과 ‘사바하’를 차례차례 제치더니 마침내 삼일절 날 정상에 올랐다. 손익분기점(50만명)도 이미 넘었다.
‘항거’는 유관순 열사가 3ㆍ1 운동으로 투옥돼 1년여 뒤 죽음을 맞기까지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실의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한 옥중 투쟁을 담았다. 1920년 3ㆍ1운동 1주년에 다시 들불처럼 번져 나간 만세 함성이 바로 이곳 여옥사 8호실에서 시작됐다.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야기다. 갖은 고초에도 독립 의지를 꺾지 않은 8호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연대를 새로이 알게 된 관객들은 뜨거운 입소문으로 응답했다.
개봉 전에는 시류에 편승해 급조된 기획상품 아니냐는 선입견도 존재했다. 하지만 자극적 연출을 배제하고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고 겸허하게 역사를 응시하는 진정성으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수원에서 기생 30여명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했던 김향화(김새벽),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선배로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인 권애라(김예은), 아이를 임신한 채 투옥돼 온갖 고생 속에서도 아이를 키워낸 임명애(김지성) 등 실제 8호실 독립운동가들은 영화를 계기로 스크린 밖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에도 갈채가 이어진다.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의 신념과 인간미를 단단한 눈빛과 천진한 미소에 담아냈다. 김새벽과 김예은, 김지성, 다방 직원 이옥이를 연기한 정하담 등 독립영화계에서 손꼽히는 배우들도 힘을 보탰다. 3평 남짓 비좁은 옥사에서 25명이 생활하는 모습을 함께 그려낸 단역 20여명도 연극 무대와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과 조ㆍ단역 배우 15명은 3ㆍ1 운동 100주년 기념식 무대에서 ‘아리랑’ 공연도 했다.
영화계는 ‘항거’가 ‘동주’와 ‘귀향’의 쌍끌이 흥행을 넘어설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두 영화는 2016년 삼일절 즈음 개봉해 각각 117만명과 358만명을 동원했다. ‘동주’는 순제작비 5억원으로 만들어졌고, ‘귀향’은 시민 7만5,000여명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어렵사리 완성됐다. 당시 관객들은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라며 자발적으로 예매율과 좌석판매율을 높여 스크린 수를 늘려 나갔다. ‘항거’ 흥행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항거’의 홍보사 이노기획의 관계자는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기대 이상 흥행으로 이어졌다”며 “무대 인사를 통해 체감하는 관객 호응은 한층 뜨겁다”고 말했다.
‘항거’ 관람 후기 중에는 엔딩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수형 기록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위로 배우들이 직접 부른 ‘석별의 정’이라는 노래가 흘러 감동을 더한다. 온라인에선 엔딩크레디트가 흐를 때 관객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는 영상이 올라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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