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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명쾌해 삼국지 입문서로 제격... 삶의 선택 고민하는 사람들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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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명쾌해 삼국지 입문서로 제격... 삶의 선택 고민하는 사람들 읽어보길"

입력
2019.03.03 17:00
수정
2019.03.04 16: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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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김영문, 초한지 원본 ‘서한연의’ 첫 완역

구리산(九里山) 십면매복(十面埋伏) 작전을 그린 장면. 유방은 항우를 잡기 위해 사방을 둘러싸는 전술을 구사했는데,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유방의 승리로 끝난 전쟁은 사실상 이 전투에서 결정됐다. 교유서가 제공.
구리산(九里山) 십면매복(十面埋伏) 작전을 그린 장면. 유방은 항우를 잡기 위해 사방을 둘러싸는 전술을 구사했는데,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유방의 승리로 끝난 전쟁은 사실상 이 전투에서 결정됐다. 교유서가 제공.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다룬 중국 소설 초한지. 중국에선 삼국지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데 한국에선 저평가돼 왔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면초가(四面楚歌), 지록위마(指鹿爲馬) 등 수많은 사자성어가 초한지에서 나왔지만 사료로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도 드물다. 초한지 원본인 ‘서한연의’를 국내에서 처음 완역한 인문학자 김영문(59)씨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본을 온전히 다룬 책이 없었던 탓에 초한지는 근본 없는 작품 취급을 받아왔다”며 초한지가 홀대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초한지를 번역해 나온 책은 축약됐거나 창작본이었다. 원본을 번역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서울대에서 중국현대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씨는 국내 최초로 루쉰전집 등을 완역한 중국문학 전문가다.

초한지 원전 ‘서한연의’를 완역해 ‘원본 초한지’를 펴낸 인문학자 김영문씨는 “초한지는 삼국지보다 앞선 시기를 다뤘을 뿐 아니라 독자적 내용을 갖췄다”며 “삼국지의 아류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초한지 원전 ‘서한연의’를 완역해 ‘원본 초한지’를 펴낸 인문학자 김영문씨는 “초한지는 삼국지보다 앞선 시기를 다뤘을 뿐 아니라 독자적 내용을 갖췄다”며 “삼국지의 아류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초한지 관련 서적은 꾸준히 나왔다. 기존 것들과 차이가 있다면.

“시중에 나온 삼국지는 중국 명나라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를 원본으로, 청나라 때 모종강이 정리한 판본이 기준이다. 초한지도 1588년 전한지전을 시작으로, 1612년 명나라 말 견위가 지은 ‘서한연의’가 원본으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 조선시대 현종 때 완역된 이후로 지금까지 원본을 정리해 출간된 적이 없다. 이문열 등 유명 작가들이 초한지를 많이 내놨지만, 편집, 윤색을 하는 등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편한 것들이다. 가장 오래된 현존 초한지인 서한연의를 있는 그대로 정리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문열 작가는 ‘서한연의’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원본으로 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가 ‘역사를 뒤틀고 엇바꿈이 지나치다’고 비판했던 ‘구리산 십면매복(유방이 주위 제후들을 포섭해 항우를 총공격 하는 장면. 이 전투에서 패배한 항우는 자결을 택한다) 같은 부분은 이 작가가 인정한 삼국지 원본에도 등장한다. 없는 얘기를 지어냈다고 보기 힘들다.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모두 민간에서 구전으로 공연되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쓴 거다. 당시 민초들이 좋아할 만한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견위 또한 서한연의를 쓸 때 ‘너무 황당무계하고 역사와 어긋난 부분이 많더라’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작가마다 나름의 역사관을 갖고 집필했다는 점에서 이문열과 견위의 문제의식은 같다.”

-지금 왜 초한지를 읽어야 하나.

“역사는 우리가 거울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다. 초한지는 ‘난세를 돌파하는 리더십은 어때야 하는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모든 행위는 정당화되는가’ 등등 여러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전쟁을 치르던 항우와 유방은 홍구(鴻溝)를 경계로 천하를 나누는 강화조약을 맺는다. 민초들 입장에선 전쟁을 마무리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유방은 주변 모사꾼들의 말만 듣고 협정을 파기하고 항우를 공격한다. 신의를 깨트리고 얻은 승리를 과연 떳떳하다고 볼 수 있을까. 최근 중국에서 유방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쓴다. 의리가 없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 전쟁에서 졌지만 솔직 담백한 성격에 오로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난세를 돌파해 갔던 항우에 대한 인기는 치솟고 있다.”

범증과 항백이 천문 하는 장면. 두 사람은 하늘의 기운이 항우와 유방 둘 중 누구에게 맞닿아 있는지를 두고 얘기한다. 두 사람 모두 결론은 유방.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묻는 항백에게 범증은 이렇게 답한다. “어찌 하늘의 기틀이 저쪽에 있다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겠소.” 교유서가 제공.
범증과 항백이 천문 하는 장면. 두 사람은 하늘의 기운이 항우와 유방 둘 중 누구에게 맞닿아 있는지를 두고 얘기한다. 두 사람 모두 결론은 유방.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묻는 항백에게 범증은 이렇게 답한다. “어찌 하늘의 기틀이 저쪽에 있다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겠소.” 교유서가 제공.

-저자로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항우 편에 섰던 범증이란 인물이다. 항우는 군사력은 막강했으나, 전략을 짤 ‘머리’가 없었다. 이에 병법이 뛰어나고 식견이 넘치는 범증을 데리고 온다. 범증은 전쟁이 거듭될수록 항우보다는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사람이라고 깨닫는다. 하지만 한신 팽월 영포 등 항우 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항우를 배신했는데도 끝까지 항우를 지킨다. 그러나 범증의 말로는 처참했다. 유방 쪽에서 범증을 없애기 위해 범증이 자신들과 내통하고 있다고 정보를 흘리고 범증은 쫓겨났다. 훗날 범증은 이런 얘기를 한다. ‘하늘이 하는 것을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듯, 인간이 하는 것을 하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범증을 어리석다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뻔히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시도하고 노력하는, 근성과 끈기를 가진 사람의 전형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에게 초한지를 추천해주고 싶나.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데, 초한지는 삼국지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쾌하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이 1,910명에 달하지만 초한지는 300여명이다. 유방과 항우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캐릭터와 대결 구도로 스토리 전개도 빠르다. 초한지를 삼국지의 입문서로 읽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초한지에는 서로 이익이 어긋날 때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대와 거래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이 묘사된다. 살면서 어떤 선택이 올바른지 늘 고민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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