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결렬 후 ‘간보기’ 2라운드… 미국, 회담 결렬 책임 떠넘겨
중국 “일방적 비핵화 압박 잘못” 역할 강조, 북한은 반응 없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당사국들이 향후 협상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2라운드에 돌입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거듭 압박하며 회담 결렬 책임을 떠넘기자, 중국은 ‘일방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만을 압박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은근슬쩍 북한을 엄호하고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베트남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행군을 선택, 중국과의 공조체제를 과시하는 한편 즉각적인 추가 반응 없이 숙고에 들어갔다. 회담 결렬 배경을 두고 서로가 서로의 의중에 대해 간을 보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포문을 열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미 보수 진영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한 그는 연설을 통해 “합의를 이룬다면 북한은 빛나는 경제적 미래를 가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들이 핵무기를 가진다면 어떠한 경제적 미래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 것”이라며 “모든 것이 잘 되면 다른 나라들이 북한에 원조를 제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관계가 매우 좋다”고 거듭 분위기를 띄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비핵화에 있어 실질적인 진전을 먼저 이뤄야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기존의 강경 입장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1일 한중일 외교장관과 연쇄통화를 갖고 비핵화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국무부에 따르면, 그는 특히 양제츠(杨洁篪)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통화에서 “대북제재는 핵이 없는 북한을 보기 위한 전 세계 노력의 핵심적인 기둥”이라고 강조했다. 대북제재가 미국만이 아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다자적 차원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제재 해제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반면, 중국이 공개한 내용은 뉘앙스가 좀 다르다. 관영 신화통신은 2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중국과의 소통을 원한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전했다. 이어 양 정치국원이 “중국도 건설적 역할을 계속할 테니 북미 양측은 꾸준히 회담을 추진해 새로운 성과와 진전을 이뤄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회담이 기대에 못 미쳤지만 북미 양측의 진정성과 기대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양측이 모두 잘못 행동한 상황에서 북한이 안보를 보장받지 않고 실질적으로 핵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회담 결렬의 책임을 북한에 돌리는 미국 주장을 에둘러 반박한 것이다.
앞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 인터뷰 등을 통해 “모든 대북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던 북한은 당분간 숙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용열차를 타고 2일 귀로에 오른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도착할 5일까지, 최소 사나흘간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도 3일까지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 일정만을 소개했을 뿐,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반응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주요 당사국들은 당분간 북핵 협상에 대한 적극적 추동보다는 적절한 ‘관망기’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의 경우, 결국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회귀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노이 회담 결렬을 전후해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북한이 더이상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이 때문에 “북핵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그는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다음에도 “북미관계가 매우 좋다”는 메시지 발신을 반복하고 있다. 도박성 협상보다는 최소한 북한이 더는 무력 도발을 하지 않는 ‘현상 유지’에 방점을 찍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러시아 스캔들’과 ‘멕시코 장벽 건설’ 문제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 미국 국내 현안도 산적해 있어 북핵 문제에 대한 미 행정부의 관심은 당분간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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