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해외사이트 차단 조치,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중 하나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헌법의 기본권은 절대적이지만 불법 촬영물, 소위 몰카와 불법 도박 등 때문에 일부 해외사이트 차단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사실 이 답변은 가장 핵심적인 질문, 이 조치가 검열 또는 감청일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거의 완벽하게 회피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엔 여백이 너무 모자랄 것 같다.
이 위원장의 말처럼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불법 사이트에 대한 검열이 필요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검열의 주체와 방식이다. 이 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심의에 따른 것이라 주장했는데,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방심위는 형식상으론 독립기구지만 방송을 제재하고 인터넷을 통제하는 등 강제성을 가진 사실상의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여야가 6대 3으로 위원을 임명하는 구조니 전문성과 독립성은 뒷전이고 정권의 향방이 성격을 결정한 지 오래다. 민간에 추천권을 맡기는 진정한 독립기구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매번 말 뿐이다.
이명박, 박근혜 시기의 방심위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특히 당시 여당 몫 위원들은 정파성을 대놓고 드러냈고, 위원 개개인의 주관적인 잣대나 취향 따위로 제재를 결정하기도 했다. 어떤 거짓 보도는 모 정당 원내대표의 명언마냥 주어가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 한 위원이 다른 위원을 ‘어느 국민이냐’ ‘한국에서는 한국답게 회의에 임하라’ 윽박지르는 장면도 있었다. 어떤 회의에서는 키스 장면이 자신이 보기에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제재를 의결했다.
방송은 그나마 양반인 게, 인터넷 차단은 아예 깜깜이다. 차단 목록과 그 사유, 심의 절차 등이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다. 그 과정에서 여러 촌극도 생겼다. 기부금조로 돈을 받고 낙태약을 보내주는 불법 사이트 ‘위민온웹’은 차단되었다가 최근 다시 해제되었는데, 방심위는 이에 대해 원래 차단 대상이 아니지만 통신사에서 기술적 오류로 차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뿐만 아니라 가상의 아동ㆍ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사이트도 여럿 차단되었다가 해제되었는데, 이들도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다. 불법이라 차단된 줄 알았더니 금세 해제하고, 이렇게는 접속되고 저렇게는 차단되고, 기준이 자의적이란 방증만 보여준 셈이 됐다.
우리나라는 표현물에 대한 규제가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선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합의ㆍ계약 하에 촬영하고 유통하는 성인물은 물론 가상의 표현물도 수위에 따라 모두 불법 딱지가 붙는다. 이렇게 현행법상 불법의 범위가 너무 넓으니 결국 차단 여부는 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실수로’ 사이트를 차단하는 일도 부지기수이고 심지어 멀쩡한 국내 웹툰 서비스가 차단당하는 일까지 있었으니, 그 자의적 판단이란 게 썩 믿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문제는 감시자들을 대체 누가 감시하느냐 하는 아주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온다. 적어도 독립기구란 말장난 뒤에 숨은 방심위는 아닐 것 같다. 불법 촬영물, 소위 몰카에 엄중히 대응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게 무분별한 검열의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방심위의 불투명한 검열을 착한 검열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모든 종류의 검열에 반대할 힘을 잃게 된다. 검열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자행됐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보, 테러, 또 때로는 선량한 정서와 풍속 따위. 개별 사례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라는 모범 답안 대신 실효성 없는 차단에 골몰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원하는 건 결국 검열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불온통신 이래 줄곧 이어져왔던, 윗분들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건전한’ 검열 말이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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