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인간을 노동하게 만들었는가! 출ㆍ퇴근길 버릇처럼 중얼거리게 되는 원망. 마음은 이미 열 번도 넘게 사표를 내고 야근도 상사도 차별도 경쟁도 없는 유토피아를 찾아 유랑하고 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매일 아침 얌전하게 버스에 발을 내딛는 나를 발견한다. 나만 이런 고민을 안고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지난달 취업정보사이트 사람인HR이 직장인 8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 가까이(86.6%)가 ‘사표 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 있다’고 대답했다.
두 번이나 대기업에 사표를 낸 용감한 ‘퇴사 선배’이자, 현재는 법무법인에서 노동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양지훈 변호사는 말한다. “우리는 퇴사를 결심하기 이전에 일하는 동안 자신으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저서 ‘회사 그만두는 법’을 통해 퇴사 방법은 물론, 퇴직에 앞서 우리가 되새겨 볼 것 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퇴사를 결심하기 전. 현행법은 생각보다 근로자의 자유의사를 널리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7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 저자는 만성적 야근, 휴일 워크숍, 언제나 웃는 얼굴 같은 것들을 직접적 강제 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성 강제 근로’라고 본다. 문제가 반복되면 개인 홀로 감당하려 하지 말고 노동법과 사규를 적극 활용해 회사나 사회적 차원으로 접근해 해결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마치 무대 위에서 역할을 부여 받은 것처럼 사디스트와 매조키스트가 돼 서로를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일터의 모순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
퇴사를 마음먹었다면, 회사에 휘둘리지 말자. “장사는 아무나 해? 밖은 지옥이야” “3, 6, 9년 차에는 다 그래, 조금만 버텨” 같은 선배들의 조언을 겨우 뒤로하고 사직서를 눈 앞에 둔 직장인들은 회사의 퇴사 ‘승낙’ 절차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저자는 “근로자가 사직의 의사를 회사에 통보하면 되는 것이지 사용자로부터 사직을 허락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용기를 준다. 민법 제660조에는 ‘고용 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 통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회사 그만두는 법
양지훈 지음
에이도스 발행ㆍ224쪽ㆍ1만2,000원
사직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이라면, 퇴사 이유가 온전히 본인 의지에 따른 것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회사의 교묘한 압박 탓이 아닌지 곰곰이 따져보란 뜻이다. ‘회사형 인간’으로 길들여진 근로자들은 회사의 어떠한 움직임에도 저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악용하는 일부 사업장은 집단적 괴롭힘이나 모욕적 면담, 인사평가 등을 통해 퇴직을 압박한다. 만약 퇴사 의사가 없는데도 이런 상황에 놓였다는 이유로 사직서에 도장을 찍는다면 추후 문제를 알아챘을 때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사라진다.
결재 과정을 모두 마쳤다면, 겁 먹지 말자. 저자는 퇴사를 마음에 품은 모든 직장인, 그리고 용기를 낸 퇴사자들에게 위로의 시를 하나 보낸다. ‘살아야 하기에 김밥 한 줄/버텨야 하기에 밤을 샌다/입천장은 헐었고/눈꺼풀은 무겁고/책상 위의 커피는 동났다/위는 쓰린 새벽 3시/내일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지만/내일이 와야 끝날 수 있는 오늘이다/샐 수 있는 밤과/살 수 있는 밥과/곧 올 내일’(도현지, 새벽 3시)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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