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일주일 동안 콧살을 찌푸리며 웃던 버릇은 이제 그만두고, 오늘부터는 입을 크게 벌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는 새 버릇이 생겼다. 누구를 보고 따라 하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태어난 지 11개월 된 딸의 작은 몸짓 하나도 아빠는 놓치고 싶지 않다.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말은 어찌나 빨리 배우는지, 아이의 행동과 감정표현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부모의 마음은 80년 전에도 같았나 보다. 이 육아일기는 1939년 6월7일에 쓰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ㆍ최선화(1911~2003) 부부가 남긴 육아일기인 ‘제시의 일기’ 중 한 부분이다. ‘제시의 일기’는 부부가 직접 지은 제목이다. 첫 딸 제시가 태어난 1938년부터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 온 1946년까지 8년간 이어진다. 이들의 손녀이자 제시의 딸인 김현주씨가 할머니로부터 전해 받은 일기장 내용을 정리했다. 1999년 책으로 출간됐다가 3ㆍ1 만세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20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양우조는 집안의 돌림자인 ‘제’자를 넣어 두 딸의 이름을 지었다. 제시와 제니. 모두 영어 이름이다. “아이가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기 또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었다. “제시는 기쁨과 위로를 수시로 꺼내어 주는 이척오촌칠분반 크기의 커다란 복주머니”라는 딸 바보의 면모도, “쉬운 말은 다 알아들어서 데리고 놀기가 좋지만, 억지를 쓰며 심술을 부릴 때가 있어서 곤란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초보 아빠의 애환도 요즘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부부는 날이 좋으면 일본의 공습을, 비가 내리면 낡은 집이 무너질 것을 염려해야 했다. 임시정부 일원이었던 부부가 중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을 땐 중일전쟁이 한창이었다. 공습경보는 날이면 날마다 울렸다.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안고 뛰어 숲 속으로, 동굴 안으로, 무덤 옆으로 피신했다. 1938년 류저우에 머무를 무렵 일본의 공습으로 주거지가 불바다가 되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선화는 이렇게 남겼다. “천장이 내려앉는 듯 작은 돌 부스러기가 자꾸 떨어져 나는 허리를 구부려 제시의 몸을 방어하며 폭탄 투하가 멈춰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민간인들을 그렇게도 많이, 의도적으로 죽였던 일본의 잔혹한 행동은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되리라.”(1938년 12월5일)
이 기록은 상해에서 시작한 임시정부가 시기별로 어떻게 이동하며 활동했는지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크다. 광둥성 광주ㆍ불산, 광시성 산수이ㆍ류저우, 쓰촨성 치장ㆍ충칭으로 임시정부는 계속해서 거처를 옮기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부부의 딸 제시를 아껴주던 주변 어른들의 이름으로 김구, 조소앙 등이 언급된다. 김구 선생은 양우조ㆍ최선화 부부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았다. 책 속 등장인물 중 부부의 둘째 딸 양제경(제니)씨가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제시의 일기
양우조 최선화 지음ㆍ김현주 정리
우리나비 발행ㆍ289쪽ㆍ1만6,000원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