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뒷걸음질치던 국내 제조업의 생산ㆍ소비ㆍ투자 지표가 올해 1월 들어 석 달 만에 동반 반등했지만 제조업 재고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표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별개로,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의 재고가 해소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생산활동 증가로 이어지기에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특히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자동차 재고율을 해소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0년 만에 가장 높은 재고율
3일 통계청의 광업ㆍ제조업 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제조업 재고율은 지난해 10월(105.9%)만 해도 전년 말 수준을 유지하다가, 11월(111.4%)과 12월(114.8%) 110% 선을 뚫고 급등하다가 지난 1월에도 111.7%를 기록했다. 제조업 재고율이 110%를 넘은 건 외환위기 국면이던 1998년 11월(110.5%) 이래 20년 만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재고율은 1998년 9월(122.9%)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재고율은 매월 말 기준 기업이 창고에 쌓아 놓은 재고(생산자제품 재고지수)를 한 달간 시장에 내보낸 출하량(생산자제품 출하지수)으로 나눈 값이다. 재고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창고에 쌓아놓은 완제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고율 악화는 국내 주력 산업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은 제조업 전반의 출하량과 재고량을 계산할 때 각 업종별 가중치를 적용하는데, 재고 기준 가중치가 가장 높은 5개 산업(1차금속, 자동차, 화학제품, 기계장비, 반도체)의 1월 기준 재고율이 모두 100%를 웃돌았다.
◇반도체ㆍ자동차 재고율 두드러져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의 재고율이 두드러진다. 반도체 업종의 재고율은 지난해 9월 69.6%를 기록한 이후 4개월 연속 상승해 1월 121.2%에 달했다.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연속 출하량이 감소한 영향이다. 자동차 업종의 1월 재고율은 144.1%에 달한다. 자동차 출하가 6.3% 증가한 영향으로 지난해 12월(153.7%)에 비해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재고율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반도체 재고율 증가는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수요가 둔화된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올해 하반기 수요 증가를 예측해 미리 재고를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실제 지난 1월 반도체 생산지수는 161.0포인트로 반도체 출하량 감소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이후에도 꾸준히 1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반도체의 경우 하반기 플래시메모리 등의 수요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동차 업종 재고율이다. 지난해 10월 132.6%였던 재고율은 11월 137.4%, 12월에는 153.7%까지 높아졌다. 전년과 비교해도 지난해 12월 재고율은 2017년 12월(152.3%)보다, 올해 1월 재고율은 지난해 1월(141.0%)보다 높은 수준이다. 출하 부진으로 재고가 급격히 쌓여가는 형국이다.
자동차 판매 부진은 1차금속, 금속가공 등 관련 업종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 업종 재고율이 급등하면서 철강 등 1차금속업종 재고율은 지난해 10월 100.5%에서 지난 1월 103.2%로 올랐고, 금속가공업종 재고율 또한 지난해 11월 120.7%에서 12월 126.4%로 급격히 악화됐다.
◇밝아진 기업 전망 재고 줄일까
재고율 급등 추세가 지속될지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산업 생산 위축에 지난해 말부터 수출 감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기 상황은 비관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지난 12일 발간한 ‘2월 경제동향’에서 “생산과 수요 측면에서 경기 둔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기재부도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소비가 견실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와 수출은 조정을 받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기업들의 경기 전망 개선을 들어 재고율 증가세가 진정될 거란 반론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업황 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6으로 2월 전망치 대비 8포인트 급등했다. 특히 자동차 업종의 전망치는 신차효과,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으로 13포인트 오른 상황이다. 다만 이 오름세가 ‘반짝’ 상승에 그칠지, 회복세로 유지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경기 회복 여부를 판단하려면 생산량 증가와 재고율 감소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재고율은 아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소비는 재정정책에 힘입어 늘어날 수 있겠지만, 투자나 수출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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