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전쟁의 목적은 전리품(spoils) 획득이다. 점령국의 영토와 자원, 사람에 대한 인적ㆍ물적 지배권이 전리품이 된다. 정당의 궁극적 목표는 정권 획득이다. 정권을 쟁취하면 전리품이 생긴다. 가장 큰 전리품은 인사권이다. 부처 장ㆍ차관과 고위공무원, 공공기관장이나 상임이사 등 수천 개의 높은 직위에 대한 임명권을 갖는다. 이것이 엽관제(spoils system)의 내용이다. 바른미래당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340개로 총 임원수가 3,043명이다. 협회 산하단체 등 정권의 손길이 미치는 곳까지 따지면 엄청나다.
□ 엽관제로 당파적 정실 인사가 이뤄지고 선거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비전문가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공공기관 운영을 왜곡한 사례는 많다. 이런 폐단을 보완하려고 나온 것이 메리트 시스템(merit system)이다. 전문 능력을 기준으로 고위공무원을 임용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 공모제가 그 중 하나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추천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가 노무현 정부 때 공모제로 바뀌었다. 2007년 1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공공기관장과 임원 등의 임기를 보장했다. 낙하산 인사를 뿌리뽑겠다는 야심에서 나온 작품이었으나, 보수ㆍ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파행적 운영을 거듭했다.
□ 검찰이 수사 중인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정권이 바뀌면 법으로 정한 임기도 보장이 되지 않는다. 장ㆍ차관이 산하기관장들에게 ‘빚 독촉하듯’ 사퇴를 종용한다. 직권남용 혐의가 의심된다. 버티면 약점을 파고들어 쫓아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 정권 인물에 대한 표적감사도 등장한다. 공모제도 허점이 많다. 추천위는 이미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정권이 원하는 사람을 심기 위해 1차 공모를 무산시키고 재공모를 하는 방식이 흔히 나타난다. 공모 과정에서 면접 예상 질문을 미리 건네주기도 했다.
□ 공공기관장이나 임원 자리에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낙선한 인물, 노사모 임원, 문재인 팬클럽 카페지기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대거 진입했다. 관련 법률 규정도 허술하다.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최고경영자의 능력을 갖춘 사람’, ‘임원추천위는 3~5배수로 후보자를 선정하여 우선순위 없이 추천’ 등의 규정이다. 이런 애매한 규정이 자격미달 인물들이 공공기관에 대거 진출할 수 있게 해주는 구멍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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