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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 결혼은 미친 짓인가 합리적 선택인가

입력
2019.03.02 1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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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가스의 풍속화로 본 결혼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주로 그림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따질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상을 떠올려보곤 한답니다. 때로는 그림에서 경제학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하는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가 격주 토요일마다 ‘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를 연재합니다.

윌리엄 호가스 ‘결혼 직후’(1743), 런던 국립미술관, 69.9×90.8㎝
윌리엄 호가스 ‘결혼 직후’(1743), 런던 국립미술관, 69.9×90.8㎝

예전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때는 ‘제목이 미친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난달에 나온 국책연구원의 미혼 남녀 결혼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변하였는지 미처 몰랐음을 깨달았다. 이 조사에 의하면 결혼이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답변은 남성이 50.5%로 겨우 절반을 넘었으며, 여성의 경우 28.8%로 나타나서 긍정적인 답변이 10명 중 3명에도 못 미쳤다. 이 실태조사는 젊은이들의 비(非)혼화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연 결혼은 미친 짓으로 볼 만큼 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경제학적으로도 결혼은 미친 짓? 

결혼이란 특히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최소 단위의 사회적 제도이다. 결혼은 사람이 일생동안 내리게 되는 수많은 결정 중에 으뜸가는 중요한 결정일 것이다. 문제는 결혼을 선택하는데 상당한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부부 7쌍 중 2쌍 이상이 이혼을 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결혼 역시 인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따른 선택이라고 본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의 ‘결혼이론’에 의하면 결혼을 선택하려는 결정은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혼자 살아갈 때 얻는 만족보다 클 것이다’라는 기대 하에서 이루어진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적 사고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효용(utility)의 크기가 혼자 생활 할 때 얻는 효용수준보다 크다면 그(혹은 그녀)는 결혼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독신주의자로 남게 될 것이다.

문제는 독신생활에서 얻는 만족감과는 달리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만족감은 결혼을 선택하는 시점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에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점이다. 즉,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효용수준은 미래에 대한 기대치(expected value)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후 현실에서 얻는 만족도의 수준이 사전적(事前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불행은 시작되고 급기야 이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이란 과연 행복의 지름길인가 아니면 지옥의 멍에를 메고 가는 미친 짓인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객관적인 경제학자와는 달리 결혼의 비극성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남자는 권태를 느끼기 때문에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 때문에 결혼한다. 그리고 양쪽이 모두 실망한다.” 결혼의 결과가 이처럼 모두의 실망으로 끝나는 이유를 게임이론(game theory)적으로 파악해 보면, 결혼하기 위해서 남녀 각 개인이 취하는 지배적 전략(dominant strategy)에 따른 행동이 상대방의 본능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즉, 남자와 여자는 결혼시장에서 전혀 다른 목적으로 각자의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대개 상호 조화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보다는 상호 파국적인 결과로 귀결되기 쉽다는 것이다.

 ◇18세기 풍속화 속 결혼의 민낯 

그러면 18세기의 풍속화를 통해서 이렇게 파탄으로 귀결되기 쉬운 결혼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그림 중에서 ‘당대결혼풍속(Marriage a la Mode)’은 결혼에 관한 연작 풍자화로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여섯 폭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난한 귀족의 아들과 벼락부자 상인의 딸이 부모 욕심으로 사랑 없이 강제로 결혼을 하면서 제각기 애인을 두고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호가스는 위대한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오랜 세월 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은 접시 세공업자의 도제공으로 출발한 그는 특히 판화를 많이 제작해서 서민들도 미술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 근대 풍자화의 선구자였다. 당시 많은 영국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외국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었지만, 호가스는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여 영국의 문화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림 잘 그리는 방법을 배우는 유일한 길은 절대로 베끼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이태리풍의 회화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모방하지도 않았다.

호가스는 화폭에 마치 연극이 상연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있는 풍자적인 그림을 즐겨 그렸다. 그는 직접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자신의 회화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흥미롭게도 그의 그림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복장, 관습, 오락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순간을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인물을 묘사하는 독특한 기법을 구사하였다.

호가스의 연작 결혼풍속도 중 두 번째 그림 ‘결혼 직후(Shortly After the Wedding)’는 백미로 꼽힌다.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그가 그림 속에 감추어놓은 암호와 상징을 하나씩 논리적 추론으로 밝혀가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남편은 지친 모습으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그의 웃옷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테 없는 여성 모자를 애완견이 냄새를 맡고 있다. 옆에 있는 부인은 모자를 쓰고 있으므로 남편 주머니에 있는 것은 다른 여자의 모자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시계는 자정이 넘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사실은 남편이 밤늦도록 다른 여자와 즐기다가 돌아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내의 발밑에는 트럼프와 악보, 악기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의자도 쓰러져 있다. 이는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카드놀이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등을 돌리고 서있는 집사의 얼굴에서는 한심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의 상의 주머니에는 ‘재생’이라는 책이 보인다. 이 책은 감리교의 금욕주의에 관한 책이다. 호가스는 이 책을 주머니에서 삐죽 나오게 보여줌으로써 이 집사가 부도덕한 부부를 비웃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자신은 금욕주의를 가장한 집사의 행동 또한 위선적이라고 암시하는 듯하다.

이쯤 되면 결혼생활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이런 결혼생활의 파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결혼생활 실패의 위험성을 회피하는 하나의 방책으로 실제의 결혼생활과 비슷한 방식으로 모의실험을 해 본 후에 결혼을 결정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방식은 실제로 기업들이 흔히 도입하고 있는 제도이다. 기업주는 노동자를 뽑을 때 구직자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일을 잘하는지 알 수 없다. 즉,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자의 생산성에 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기업은 그들의 생산성에 관한 정확한 기대치를 얻으려고 이력서도 받고 인터뷰도 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구직자들을 실제 작업현장에 배치하고 그들의 실제 노동생산성을 직접 관찰(monitoring)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제도가 바로 인턴사원제도(internship)이다.

 ◇결혼이란 ‘칼날 위의 균형’ 

결혼시장에서 이러한 인턴십과 같은 제도는 소위 혼전동거와 같은 형태 혹은 계약결혼제도로 나타나고 있다. 북유럽이나 프랑스에서는 동거 커플이 정식 결혼한 법적 커플보다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관행을 결혼시장에 적용한다면 남녀가 서로를 모니터하는 일종의 쌍방간 인턴십 제도를 도입하는 셈이다,

결혼생활의 구조적인 모순을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결혼이란 창문을 닫고선 잠들 수 없는 남자와 창문을 열고선 잠들 수 없는 여자간의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근본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합리적 선택의 관점에서는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자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행동은 흔히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해결책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힘들 것인가? 경제성장이론 중에 ‘칼날 위의 균형’(equilibrium on the edge)이라는 불안정한 균형상태가 존재한다는 이론이 있다. 결혼생활을 잘 영위하는 일은 이러한 칼날 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파국의 위험성은 결혼생활 내내 계속된다. 그러니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영화제목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아니겠는가?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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